규모보다는 본질을 봐야/내년도 재정팽창 수용입장/최광 외국어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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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의 정책철학­일관성 부재가 문제
내년도 정부예산안이 거의 확정되어 국회의 예산심의가 가까워짐에 따라 예산에 대한 논의가 최근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활발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내용과 방법이 비생산적이어서 이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여건변화에 따른 재정역할의 재정립,세출을 뒷받침하는 국민부담의 형평성등과 같은 본질적 문제가 뒷전에 밀린채 예산에 대한 논란이 규모의 팽창여부에 집중되고 그것도 팽창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사실조차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채,그리고 더 나아가 그릇된 논리 전개나 주장의 개진으로 정책의 방향을 잘못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에 대한 논의가 팽창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비생산적이이지만 많은 논의가 예산규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내년도 예산규모 33조5천억원이 어느정도 팽창인지,그리고 우리나라의 재정이 과연 큰 규모인지를 사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1991년도의 당초예산이 27조원이고 두번의 추경을 거친 최종예산이 31조4천억원이므로 내년도 예산은 금년도 본예산대비 24.2%,최종예산 대비 6.8% 증가된 것이다.
만약 내년도에 추경이 편성되지 않는다면 내년도 예산증가율 6.8%는 198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또한 내년도 예산을 금년도 본예산대비로 한자리 숫자의 증가율로 편성하면 내년도의 예산규모가 금년도 최종예산보다 절대규모에서 적어지는 매우 이상한 결과가 초래된다.
예산규모의 팽창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정부가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 같다. 80년대 초반이후 많이 회자도는 「작은 정부」 또는 「값싼 정부」는 오래전부터 사회사상가와 경제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으로 매우 매력적인 용어이며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할 하나의 이상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적어도 재정운용과 관련해서는 결코 「큰 정부」가 존재해본 적이 없으므로 「작은 정부」란 말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데 있으며 정부의 적정규모를 찾으면 예산 규모가 지금보다 다소 큰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떠한 지표를 기준으로 해도 우리나라의 재정규모는 선진 여러나라와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비슷한 여건에 처해있는 다른 나라,그리고 선진국들이 우리의 경제발전단계에서 시현했던 재정규모와 비교해 현격하게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산편성도 여타의 경제활동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대안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예산규모는 그 자체로서는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논란의 주된 대상으로 부각되는 것은 문제다.
특정연도의 정부예산 규모는 특정사업을 민간이 하느냐,정부가 하느냐,정부사업을 당해연도에 하느냐,뒤로 미루느냐,성장·안정·형평중 어느 목적에 중점을 두느냐,정부사업을 중앙정부가 하느냐,지방정부가 하느냐,예산을 현실화시켜 추경을 편성하지 않느냐,문제가 많은 추경을 계속 편성하느냐 등의 선택의 결과다. 이러한 선택이 시대에 따라 다르므로 예산의 내용과 규모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변화될 수 밖에 없다.
경제정책 일반은 물론 예산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비난받아야할 사항중의 하나는 정책철학의 부재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정책기조 및 방향의 명백한 제시와 과정인 정책수단의 일관성있는 강구다. 치밀한 사전준비가 없어 시행착오가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으며 정책의 추진에 있어 지도력의 발휘는 포기한지 오래다.
예산증대의 불가피성은 오래전에 인지되었는데 이를 조직적으로 국민에게 설득시키는데 실패,허둥대기만 하고 정정당당하게 대처하고 있지 못하는 정책당국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권 또는 국회가 예산심의를 제대로 할 마음의 자세와 이를 위한 양식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국가운영을 맡고 있는 여당 책임자들의 예산에 대한 언동은 더없는 실망을 주고 있다. 특정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 전면에 나서 국민을 설득하는 적극적 태도가 아쉽다.
파행적 예산심의에 야당도 여당이상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팽창예산·선심예산이란 말로 정부를 매도하기만 했고,나눠먹기식 흥정사업에만 관심을 가졌지 진실로 국가의 장래를 위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정치가에 의한 정치예산보다 국민에 의한 진정한 정치예산이 편성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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