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3국 독립인정 “발등의 불”/서유럽 대소 대책 부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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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지원 시기·범위엔 이견/군사전략 전면재검토 필요
소련공산당 붕괴와 「소련제국」의 와해라는 혁명적 상황에 직면,서유럽국가들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소련사태는 정치·경제·외교·군사 등 각 방면에 걸친 근본적인 정책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 프랑스외교관의 말처럼 『도저히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너무 급변하고 있다』는게 서유럽정책 책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발트해 3국의 독립인정문제는 더이상 늦출 수 없는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소연방의 붕괴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고,소련의 새로운 실권자로 부상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리투아니아에 이어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를 독립주권국가로 인정한 이상 서유럽국들로서는 발트해 3국의 독립인정을 더이상 미룰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1939년 체결된 독·소 밀약에 의한 이들 3국의 소련합병을 인정치 않는다는게 지난 50년동안 유럽국가들의 공식 입장이었으나 소련과의 관계,특히 최근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개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고려가 이들에 대한 독립인정을 유보하는 명분이 돼왔다.
그러나 이번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실패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뿐만 아니라 사태 흐름에 뒤져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유럽국가들은 소련사태에 대한 경쟁적 대응 양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공동의 외교정책수행을 유럽통합의 명분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유럽공동체(EC) 12개국은 당초 발트해 3국에 대한 독립인정문제에 공동보조를 취할 방침이었으나 덴마크가 선수를 치고 나오는 바람에 무산됐다. EC 12개국 외무장관들은 27일 브뤼셀에 모여 EC차원에서의 발트해 3국에 대한 독립주권인정 문제를 논의한다.
이 회의에서는 발트해 3국이외에도 독립을 선언한 우크라이나·백러시아·몰타비아 등에 대한 주권인정문제도 논의될 예정이다.
그러나 법적·역사적 배경이 다른만큼 발트해 3국에 대해서는 독립을 인정하되 소련내 다른 공화국들에 대한 독립인정문제는 소련자체의 결정사항으로 남겨놓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지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소련의 혁명적 변화와 관련,유럽국가들로서 또다른 현안이 되고 있는 것은 대소 경제지원문제다. 특히 이 문제는 서방선진7개국(G7) 회원국인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로선 시급한 검토를 요하는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미국·일본·캐나다 등 유럽이외 지역의 G7국들과의 입장차이와 유럽내 회원국들 자체내의 의견차이로 쉽사리 결론이 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대소 적극 지원론을 펴는 독일과 프랑스는 즉각적이내소 재정원조를 주장하면서 지난 7월 런던 G7회담에서 결정된 소극적 지원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른 G7국들,특히 미국과 일본은 소련이 급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경제적 측면에서 실제적인 개혁에 착수한 것은 아닌만큼 「시장경제로의 개혁착수후 재정원조 개시」라는 기존조건은 아직 유효하다며 소련에 대한 백지수표제공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G7정상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존 메이저 영국 총리의 요청으로 오는 29일 런던에서 열리는 7개국 정상보좌관회의(일명 셰르파회의)에서 이 문제가 본격논의될 전망이다.
그러나 경제원조를 한다해도 사실상 와해상태에 들어간 소연방을 그 대상으로 할 것인지,아니면 러시아공화국등 각 공화국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의 현실적인 문제가 당장 난점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다 소련정국 자체에 아직 불투명한 요소가 많아 상당한 진통이 예상돼 이미 약속한 대소 기술원조와 식량원조를 증액하는 선에서 일단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한편 소련의 급속한 상황변화는 군사적 측면에서도 유럽국가들의 전면적인 전략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소련의 공산체제붕괴와 연방와해 가능성은 유럽에 대한 군사적 위협의 실질적 감소를 의미하지만,또다른 면에서 위험요인을 내포하고 있다는게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소련내 각 공화국에 배치된 핵무기가 중앙통제를 벗어나게 될 경우 초래될 우발적 위험은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연방체제 재정립,또는 해체과정에서 유발될 국경분쟁 가능성도 유럽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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