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하 25도 빙판에서 100㎞로 달려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만도 헤이허 주행시험장

중국 북단 하얼빈(哈爾濱))시에서 야간 기차로 11시간(600㎞)을 달려 오전 7시에 도착한 헤이허(黑河)시.

겨울 최저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중국 최북단 오지다. 시내에 하나뿐인 최고급 3성 호텔인 국제 호텔에서 간단히 목욕을 끝내고 빙판 주행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지난해만 해도 바퀴벌레와 함께 잠을 잤던 호텔이라는데 리뉴얼을 해서인지 국내 여관급은 된다.

호텔문을 나서자 코앞에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아무르강이 보인다. 오전 9시 바깥 기온은 영하 25도다. 사람의 몸 이라는게 참 신기하다. 불과 두 세 시간 안됐는데 코안부터 추위에 적응한다.

차로 20여분 달려 120만평 우아니우(臥牛)호수에 만들어진 만도 빙판 주행시험장에 도착했다. 소가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호수 입구에는 동으로 만든 소의 동상이 서 있다.

헤이허 빙판 주행시험장에서 그랜저에 달릴 차세대 자세제어장치(ESC)를 시험해 본후 만도 연구원들과 함께 했다. 왼쪽부터 김광일 북경연구소 부소장, 윤팔주 연구원,필자,윤상화 부사장, 김동신·차항병·김명훈 연구원.


호수 빙판에는 타원형 서킷 뿐 아니라 원형 및 1.8km의 직선주행로 등 8개의 코스가 만들어졌다. 서킷 규모는 20만평 정도다. 시험장 부근에는 400평 규모의 2층 시험동 건물과 8500평 규모의 육상 시험장도 지난해 함께 건설됐다.

만도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3개월간 50여명의 연구인력을 파견, 이곳에서 1~3년후 나올 첨단 브레이크와 자세제어장치(ESC) 테스트를 하고 있다. 주로 쏘나타.그랜저 등 국산차와 중국 자동차 업체에 공급할 첨단 브레이크와 조향장치를 시험한다.

헤이허 인구는 8만이다. 만도는 이 도시와 2003년 연간 2억원을 내는 조건으로 50년간 호수 임대 계약을 맺었다. 당시만 해도 헤이허시는 '대동강물을 판 봉이 김선달'식으로 무척 좋아했다. 호수만 빌려주고 얼음판 손질을 해주는데 웬 2억원이냐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가 진출했고 스웨덴 빙판 시험장이 지리적으로 아시아에서 너무 멀자 헤이허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독일 보쉬나 미국TRW 등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헤이허에 호수를 빌리고 있다. 이들 업체는 만도보다 2,3배 비싼 돈을 내야 한다. 만도가 가장 좋은 호수를 선점해버려 '빛좋은 개살구'식이 됐다.

만도 윤상화 부사장은 "오지에 불과했던 헤이허가 만도가 들어온 이후 인터넷이 보급되는 등 겨울 자동차 시험장으로 각광받고 있다"며 "헤이허에서 '만도'는 가장 유명한 회사가 됐다"고 말한다.

30여분간 브리핑을 듣고 방한화와 귀마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빙판으로 향했다.

시험 차종은 쏘나타와 그랜저, 기아차 카렌스,그리고 중국차 등 8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는 눈이 쌓여 넓은 들판을 보는 느낌이다. 눈위에 반사되는 자외선으로 눈이 따가울 정도다.

우선 눈이 덮인 직선 주행로에서 만도가 새로 개발한 차세대 ESC(자세제어장치)를 단 쏘나타를 타봤다. 주행로 폭이 200M나 돼 넓은 축구장 20개 정도를 붙여 높은 크기다. 먼저 기존 ESC가 달린 차를 타고 비교 시승을 했더니 핸들링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앞바퀴 굴림형(FF) 차량은 접지력이 떨어질 때 핸들을 급하게 돌리면 뒷바퀴가 접지력을 잃으면서 차량이 핸들을 돌린 것보다 더 많이 회전하는 '오버스티어' 현상이 나타난다. 20m간격으로 떨어진 슬라럼에서 기존 차량은 상당한 오버스티어를 느낄 수 있었지만 차세대 ESC를 단 쏘나타는 접지력을 잃는 순간 전자제어장치가 재빨리 가동하면서 브레이크와 엔진 회전수를 적절하게 제어해 원하는 핸들링이 가능했다. 특히 시속 100㎞로 슬라럼을 하는데도 차량 제어가 놀라울 만큼 손쉬웠다. 각 바퀴마다 두 개씩 더 단 센서와 브레이크 펌프를 추가해 정확한 차량 제어가 가능해졌다는 게 만도 연구원의 설명이다.

다음 코스는 원형 트랙이다. 이곳에선 속도를 높여가면서 회전하면서 ESC가 작동하는 것을 체험하는 코스다. 마찬가지로 접지력을 잃을 만큼 속도(시속 80㎞회)를 높이자 '기깅 기깅'하는 브레이크 제어 소리가 들려온다. 구형은 ESC나 ABS가 작동할 때 승차감이 나빠진다. 또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상당한 압력이 전해져 온다. 신제품은 이런 단점을 완전히 제거했다.

이번에는 모터 구동식 조향장치 EPS(Electric Power Steering)를 달고 액티브 스티어링이 가능해진 그랜저에 올랐다.

이 장치는 2004년 BMW 5시리즈에 첫 선을 보인 것으로 코너에서 핸들을 돌린 것보다 더 회전각이 크게 앞바퀴를 돌려줘 빠른 핸들링이 가능하게 한 첨단 장치다. 2㎞ 직선 구간에서 마음껏 핸들을 좌우로 돌려봤다. 이 장치는 특히 눈길에서 놀라운 코너링 실력을 발위한다. 2005년 겨울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BMW 3시리즈를 테스트하면서 인공 빙판에서 경험해본 장치다. 새로 개발한 ESC보다 더 다이내믹한 코너링을 즐길 수 있다. 현대차는 아직까지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상용화에 난색이라고 한다.

스포티한 운전을 즐기는 마니아에겐 액티브 스티어링은 새로운 운전의 즐거움을 주기 충분하다. 차량 한 대도 없는 눈길이라 드리프트 연습도 해봤다.

특히 고속주행중 사이브 브레이크를 잡고 180도 턴을 한 뒤 다시 180도를 돌려 앞으로 나아가는 드리프트(차량이 미끄러지는 것을 이용한 운전 기술)를 해봤다. 이때는 ESC 스위치를 끄고 적당한 드리프트를 이용해야 한다. 또 180도 턴을 한 뒤 곧바로 엑셀을 밟아 구동력을 잃지 않게 해야 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두 번은 회전하는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는 카운터 스티어링 타이밍이 맞지 않아 접지력을 잃은 차량이 몇 바퀴 돌다가 시동이 꺼져 버렸다. 자동변속기가 'D'상태에서 차량이 선회하다 후진을 하게 되면 엔진이 꺼진다. 세 번째 도전에서는 180도를 제대로 돌고 다시 거꾸로 돌아 어설프게 앞으로 나아가는 데 성공했다.

또 다른 시험은 레이더로 차간 거리를 제어하는 ACC(Adaptive Cruise Control: 적응 순항 제어시스템)다.

그랜저 라디에이터 그릴에 레이더를 달고 엑셀에서 발을 뗀 채 선도차를 쫓아 갔다. 앞차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엔진 회전수를 낮게 하고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차간 거리를 유지한다. 이번에는 충돌 시험이다. 고무 풍선으로 만든 모형 자동차에 시속 60㎞ 정도로 돌진했다.

레이더가 앞차를 감지하고는 경고음과 안전벨트를 흔든다. 혹시 운전자가 졸고 있다면 경고를 주기 위해서다. 충돌 거리가 10M정도로 줄자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제어, 시속 10㎞ 정도로 속도를 낮춰 충돌한다. 운전자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더라도 충돌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첨단장치다.

물론 도요타.혼다.BMW.벤츠 등 선진업체들은 2000년 초 이미 개발을 끝내고 상용화한 장치다. 기자도 2005년 일본에서 같은 시험을 직접 해봤다. 만도의 ACC는 선진업체와 비교해 손색없는 수준이다. 윤팔주 수석연구원은 "만도도 ACC 등 첨단 기술 개발은 끝냈지만 양산 업체를 찾지 못해 아직까지 연구만 하는 단계"라며 "2009년 나올 현대차의 고급차에 일부 이런 장치를 달지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 테스트는 육상 테스트장. 가장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이면(裏面) 도로 테스트다. 왼쪽은 빙판, 오른쪽은 일반 포장도로로 ESC를 달지 않은 차량은 이런 길에서 코너를 돌거나 브레이킹을 할 경우 그래도 차량이 선회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

시속 60㎞로 달려 이면 도로에서 급정거를 했다. ESC가 노면을 감지해 적절히 브레이크를 조절해 원하는 방향으로 핸들링이 가능하다. 이번에는 이면도로에서 출발이다. 노면 상태가 다를 경우 ESC가 없으면 원하는 방향대로 핸들 조작을 할 수 없다. 엑셀을 밟아 엔진 회전수를 5000RPM까지 높였다. 접지력을 잃을듯 하던 쏘나타가 이면 도로를 서서히 출발한다. 운전에 서투른 초보 운전자에겐 더없이 필요한 장치다.

헤이허=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