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헌장|병원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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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병원에 입원해본 일이 있는 사람중엔 병원식사에 관해 불평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맛이 없고 어떤 음식을 먹을지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음식 모양도 먹음직스럽지 않고 따뜻하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식사시간이 한정돼 있고, 또 자신의 평소 식사시간과는 차이가 있어서 불편한 점이 많다는 등이다 이런 불만과 관련해 물론 앞으로 개선돼야 할 점도 많으며 영양면에서 좀더 세심히 보완해야할 점도 있으나 상당한 부분은 오해 때문에 생기는 불만이기도 하다.
물론 대규모병원에서 수많은 입원환자의 입맛을 세밀하게 고려하면서 식단을 짤 수가 없어 병원식사의 맛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질병 치료를 위한 식사라는 제한 때문에 맛이 없을 수 있음을 우선 이해해야겠다.
가장 좋은 예가 고혈압 또는 심장병환자를 위해 하루 소금섭취량을 59이하로 줄인 저염식이다. 평소 하루 평균 209이상의 염분을 섭취해오던 사람이 저염식을 먹으면 음식맛이 있을 수가 없다. 이런 치료식이 아니더라도 질병 자체 때문에 입맛이 없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며 더구나 하루 세끼 식사를 하면서 하루종일 병상에 누워있으면 소화도 되지 않고 구미가 더 없어지는 경우도 많을 수밖에 없다.
병의 종류를 생각하지 않고 질병으로 고생하는 동안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꼭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병에 따라서는 높은 영양가 음식을 맛나게 조리해 환자로 하여금 칼로리 섭취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환자도 많기 때문이다.
약보보다 식보가 더 중요하다는 소박한 상식과 평소에 맛있는 음식을 해주지 못했으므로 몸져 누워있는 동안이라도 맛있는 음식,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에 집에서 여러가지 음식을 장만해 야유회 가듯 도시락을 싸서 병원에 가져오는 보호자들도 많다.
그뿐 아니다. 문병오는 사람들까지 인스턴트식품이나 통조림을 사들고 온다.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은 싱겁게 먹어야할 환자가 짜게 먹게 되며, 기름기를 피해야 할 환자가 고지방 식사를 즐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당뇨병환자의 경우 체중, 당뇨병의 정도 및 진행중인 치료법 등을 고려해 세밀히 계산한 칼로리의 식사대신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고 간식까지 즐겨서 치료자체가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저염식에 진절머리가 난 환자중에는 아무도 모르게 맛있는 외식을 하고 돌아와 그날 밤 증상이 악화돼 괜한 고생을 한 사람도 있다.
환자·가족입장에서도 구미에 맞는 다른 음식을 찾기 전에 진료요원과 한번쯤은 의논, 환자의 질병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음식종류를 같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의대·내과>서정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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