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까 말까"…강남권 집부자 우왕좌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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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권에 살면서 시가 10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를 두 채 이상 가진 사람들은 요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분양가 인하와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 등 정부의 잇단 집값 안정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강남권 부자들은 대체로 무덤덤한 모습이다. 대부분 지난해부터 계속된 부동산 대책으로 이미 절세 전략 및 포트폴리오를 수립한 터라 보유 아파트 한 채를 급매하는 등의 동요는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속 마음을 들여다보면 요즘 시장에 대한 반응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시장 상황을 지켜보자”는 ‘관망파’가 대부분이지만, “버티는 게 상책”이라는 '배짱파'도 적지 않다.

한편에선 “이제 팔아야 할 때 아닌가”하며 불안해 하는 '초조파'도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강남권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와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 관계자들의 전언을 통해 강남 부자들 속내를 들여다봤다.

“일단 기다려보자”…관망세 짙어

“별 뾰족한 대책이 있겠어요?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명지공인 송명덕 사장은 “최근 몇 개월새 집값 안정 대책이 쏟아졌지만 아직까지는 급격한 호가 하락이나 매물 증가 등의 시장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며 “이곳 아파트 주인들은 물론이고 매수세도 관망 자세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권 아파트 거래시장에는 소수 매물이 나와 있지만 집값 안정에 기여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분위기로 봐서는 추가 매물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부동산 채은희 사장은 “향후 집값 오름 폭이 지금 당장 팔지 않더라도 나중에 되팔 때 낼 양도세 증가분을 뛰어 넘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분위기가 강하고, 증여라는 대안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집값이 오르면 양도세도 많아지겠지만 시세 차익으로 이를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아예 올 연말까지 매도 여부 결정을 미루겠다는 부자들도 많은 것 같다. 신한은행 한상언 재테크팀장은 “강남권 다주택 보유자 가운데 ‘대선 때까지는 아파트를 팔지도, 사지도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따라서 지금과 같은 관망세는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선을 전후해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보유 쪽으로 가닥을 잡은 고객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공인 이병호 사장은 “대선 전까지는 추가 부동산대책이 쏟아지더라도 아파트를 서둘러 팔거나 투매하지는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망파 가운데는 봄 이사철 이후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매도 시기를 결정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우리은행 PB센터 안명숙 부동산팀장은 “지금은 관망세가 짙지만, 봄 이사철 이후에 매도 여부를 결정하려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봄 이사철 이후 집값이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약세 장세가 지속될 경우 보유 주택 한 채를 팔고, 반대로 가격이 상승할 조짐이 나타나면 계속 보유하는 쪽을 택하겠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양도세 부담 때문에 팔고 싶어도 못 파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송파구 잠실동 송파공인 관계자는 “강남권 재건축 초기 단지의 경우 최근 한 달 새 호가가 5000만원 가량 빠진 곳도 많지만 추가 하락 우려 때문에 집을 내놓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양도세 부담이 더 크기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올해는 버티겠다는 집주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책 아무리 많이 내놓아도 집 안 팝니다"

정부의 고강도 대책에 부자들이 움츠러들 법도 한데 의외로 ‘배짱’ 부자들도 많다는 게 은행 PB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강남권 집 소유자 중 상당수가 보유세와 양도세를 낼 때 내더라도 그냥 집을 안고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강남 지역 PB 고객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무신경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한은행 스타시티지점 관계자는 “집을 팔 만한 사람은 이미 지난해 말 양도소득세가 중과되기 전에 거의 다 팔았다”며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내놓아도 강남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고객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대치동 E공인의 한 관계자도 “올해 상반기나 내년 이후에는 다시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는 부자들도 의외로 많다”며 “양도세ㆍ종부세에 대한 압박과 정부의 잇단 대책도 부자들의 '부동산 불패 신화' 믿음을 짓누르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도세 부담도 부자들이 버티기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남구 삼성동 LBA우리공인 관계자는 “양도세가 너무 많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을 아무리 내놓아도 갖고 있는 집을 처분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집주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출 규제? 우린 신경 안써요”

주택 투기지역과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담보대출을 1건으로 제한했지만 강남권 다주택자 중 상당수는 요지부동이다. 일단 대출금 만기시까지 시간을 갖고 기다려 보자는 입장인 것 같다. 신한은행 고준석 부동산 PB팀장은 “PB 고객들이 대출 규제에는 별로 동요하지 않고 있다”며 “대출 규제를 해도 만기 때까지 여유가 있는 만큼 시간을 두고 기다려 보자는 분위기고,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이미 적용돼 왔던 것이라 특별히 부담을 느끼지는 않고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PB 담당자는 “지난달 말 발표된 1.31 대책과 관련해 상담을 요청해 온 고객은 아직 없다”며 “금융 규제 대책의 골자 중 하나가 대출 제한인데 고액 자산가들의 경우 10억원 넘는 아파트를 사더라도 대출은 2억원 밖에 끼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나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집값이 이제 꼭짓점에 도달한 것 같아 집값 급등기였던 지난 10월에 팔았어야 한다”는 후회와 함께 “지금이라도 서둘러 집을 팔아야 하나” 고민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초구 잠원동 한양공인 관계자는 “정부가 예상보다 강도 높은 투기 억제책을 내놓아 밤잠이 안온다고 하소연하는 손님도 가끔 있다”며 “‘매수세가 나타나면 어떻게든 팔아달라’고 부탁하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어 민망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안명숙 팀장은 “지난해 양도세 등을 우려해 잉여 주택을 팔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단순한 불안감이 아닌 위기의식에 휩싸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들은 대부분 토지 보상 등으로 거금을 손에 쥔 뒤 지난해 하반기 강남권을 집을 두 채 이상 사들인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강남권 집값을 잡기 위해 그동안 정부가 쏟아부었던 부동산대책에 따른 시장 상황 변화를 경험해 보지 못하다보니 현재의 집값 약세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 한 채 팔고 상가 등으로 갈아탈 볼까?”

아파트 한 채를 처분하고 규제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상가와 상가빌딩 등 수익형 부동산상품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큰 손들도 적지 않다.

잠실동 송파공인 최명섭 사장은 “상가빌딩은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데다 고정적인 임대료가 나오기 때문에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이다보니 집 한 채를 처분하고 ‘돈되는’ 상가를 알라봐 달라는 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다주택자 가운데는 상가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상가뉴스레이다 정미현 연구원은 “강남권 상가빌딩이라고 하더라도 수익률이 연 5~6%를 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값만 비싸고 실속이 없는 상가를 잡았다가 후회하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강남 빌딩 소유자 절반 이상 "집값 떨어질 것"

또 강남지역 빌딩을 소유한 부자 가운데 절반 이상(55%)이 올해 서울ㆍ수도권 아파트 값이 1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이들 강남 부자들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빌딩자산관리업체 포커스에셋이 지난달 30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강남ㆍ서초ㆍ송파구에 위치한 평균 70억~80억원 빌딩을 소유한 자산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15%에 그쳤고, 27%는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집값 하락 전망이 많은 것을 반영하듯 소위 '버블세븐'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를 추가 구입할 의향이 없다는 비율이 85%에 달했다.

한편 부자들은 최근 유행하는 국외 부동산 투자에 대해선 다소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유망한 재테크 수단은 부동산이라는 응답이 55명으로 가장 많았다. △주식(22명) △은행 저축(10명) △채권(6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부동산 중에서도 특히 상업용 빌딩(26명)을 가장 유망한 상품으로 꼽았다. 이어 △상가점포(22명) △재개발(19명) △재건축(12명) △토지(10명) △주상복합아파트(3명) 등 순으로 조사됐다.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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