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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시시각각

베이비 붐 세대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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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한국전쟁 정전(停戰) 직후인 1955년부터 산아제한이 시작되던 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만으로 따져 올해 44~52세의 연령층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8%인 713만 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중 직장에 다니는 220만 명의 조기 은퇴가 시작됐다. 베이비 붐 세대의 퇴장이다.

한국 기업들의 평균 정년은 57세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정년은 52.3세다. LG경제연구원의 조사다.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젊은 피'를 선호한다. 취업을 기다리는 젊고 유능한 인력이 도처에 넘쳐난다. '사오정'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마당에 베이비부머의 조기 퇴직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비록 '콩나물 시루' 속에서였지만 우리 세대는 열심히 공부했다. 어렵게 살았지만 '하면 된다'는 희망이 있었다. 입시지옥도 거쳤다. 사회에 나와서는 고도성장의 전위대로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사이에 낀 '샌드위치 세대'다. 아날로그 세대도 아니고, 디지털 세대도 아니다.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구조조정 태풍에 내몰리기도 했다. 살아남은 베이비부머는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 밀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는 억울하다.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 외국 유학과 연수를 한 젊은 세대처럼 발음이 매끈하진 못해도 영어라면 우리도 자신이 있다. 어려운 단어는 더 많이 알지도 모른다. 출장이니 해외근무니 해서 외국 경험도 할 만큼 했다. 우리도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4800만 인구가 바둥거리는 좁은 이 땅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미국의 월간 잡지인 '인터내셔널 리빙'(www.internationalliving.com)이 최근 발표한 '2007년 삶의 질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195개국 중 50위다. 생활비.레저 및 문화.경제.환경.자유도.건강.인프라.안전.기후 등 9개 항목에 걸쳐 종합 평가한 결과다. 한국보다 생활비는 싸게 먹히면서 삶의 질은 높은 나라가 37개국이나 된다. 10위까지만 놓고 보더라도 호주.네덜란드.뉴질랜드.미국.이탈리아.아르헨티나의 생활비가 한국보다 싸다.

1위로 평가받은 프랑스도 파리만 벗어나면 한국 돈으로 1억원 안쪽에서 살 수 있는 집들이 수두룩하다. 프로방스.코트다쥐르.미디피레네.브르타뉴.론알프… 프랑스는 시골로 갈수록 살기 좋다. 파타고니아의 대자연과 말벡 포도주가 있는 아르헨티나도 좋다. 서울의 아파트 한 채를 팔면 수천 평의 대지가 딸린 대저택을 여러 채 사고도 남는다. 지중해성 기후와 풍광, 역사가 어우러진 이탈리아도 좋다. 완벽한 날씨를 원한다면 짐바브웨와 몰타.남아공도 대안이다.

언어가 문제라고? 마음먹고 6개월만 파고들면 생활에 필요한 정도는 어떤 언어라도 할 수 있는 게 우리 세대다. 뭘 해서 먹고 사느냐고? 산 입에 거미줄 치진 않는다. 어디서든 아이디어와 의지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수동적인 세계화이고, 소극적인 세계화였다.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스스로 더 열어야 한다. 제2의 개방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세계화다. 베이비 붐 세대가 그 주역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있다.

아파트를 팔자. 그리고 떠나자. 더 나은 삶의 질과 '제2의 인생'을 위해. 한반도 밖의 넓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베이비부머여, 세계로 날자.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