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자 그리고 2인자/전육(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민자당을 보면 볼수록 아직은 단일 집권여당이라기보다 정당연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특히 최근 한바탕 소리를 낼 뻔한 청와대·민주계·민정계간의 대권갈등양상은 집안다툼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 같다.
문제를 보는 기본시각,동원되는 술수,쟁취목표가 달라도 너무 달라 내막적으로는 상호불신과 대치의 치열함이 순식간에 적대관계로 돌변할 소지를 안고 있다. 아직은 결전의 시기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겉으로 점잖은 표현을 하고 있지만 각 캠프는 이미 혈전을 각오한 전략수립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내각제에 강한 집착
먼저 청와대의 내밀한 속셈을 보자. 요즘 청와대 참모들은 노태우 대통령이 강한 집착과 미련을 갖고 있는 내각제개헌을 어떻게 되살리느냐에 궁리를 짜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내각제개헌불가」라는 노 대통령의 언급에도 불구,내각제를 재거론한 최영철 특보가 엉뚱한 발언을 한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여권내에 별로 없다.
현재 청와대의 속 분위기는 개헌의 열쇠를 김대중 신민당 총재가 쥐고 있으며 잘하면 작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는 쪽이다. 김대중씨의 U턴 가능성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얘기다. 7·16 노­김대중 회담에서 어떤 힌트를 강하게 받지 않았나 싶다.
참모중에는 광역의회선거후 김대중씨의 내각제에 대한 인식이 보쌈질이라도 당했으면하는 청상과부의 심경이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때문에 김 총재가 유엔총회에 대통령과 함께 가고,남북관계에 중요역할을 맡길 찬스가 있거나,14대 총선에서 지역고립감을 재확인 받으면 내각제 지지로 돌아설수도 있지 않느냐고 기대하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의 내각제에 대한 미련은 양김 대결에 의한 지역감정악화 방지,퇴임후의 사후보장 때문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이 때문에 내각제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두는 것과 대통령후보지명을 최대한 미루는 문제는 한 묶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이 시나리오가 희망사항으로 끝날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다. 정치 고단수에 변화무쌍한 김대중씨가 거꾸로 발목을 잡을수도 있고 김씨의 대선회를 유도할 여건조성이 빗나갈 가능성도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영삼씨를 홀대하거나 섣불리 자극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쓴다. 이를테면 측근 참모들을 통해 끊임없이 안심용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양김이 반대하면 내각제가 불가능한것 아닌가. 민자당의 직선대통령 후보는 자연히 당선가능성이 높은 YS로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안심용 메시지 흘려
자유경선을 얘기하지만 민정계에서 1년내에 대타를 키울수 있겠는가. 조용히 수권태세를 갖추고 대통령에게 심복하고 있으면 저절로 기회가 갈텐데 왜 조급해하는가. 대통령이 일찍 화끈하게 지명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 일사불란했던 여당때와는 리더십의 질이 달라졌기 때문아닌가 등등….
그러나 김영삼 대표는 청와대가 자신에 대한 포위작전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아울러 노 대통령을 믿고기다리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며 도전을 통한 쟁취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결심을 굳히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김 대표와 민주계의 대통령에 대한 불신 역시 차츰 높아가고 있다. 즉 대통령이 더블 플레이를 하고있다는 확신같은 것이다.
김대중씨와의 내각제 흥정은 물론이고 박태준·김종필 최고위원에게 각기 다른 사탕을 던지고 있다는 의심까지 한다. 김 대표 스스로 여러번의 독대경험,전두환·정호용씨 처리과정 등을 통해 목격한 노 대통령의 일처리 스타일에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도 있다.
이때문에 민정·공화계에 대한 노 대통령의 영향력이 확실한 공천,총선전에 후보지명을 보장받자는 김 대표의 결심은 양보나 타협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얘기다. 절대절명의 생존전략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대통령과 김대중씨간 내각제타협은 이뤄지기 어렵고 최악의 경우 자신이 뛰쳐나가면 무산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인 듯하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민정·공화계는 과연 청와대가 김 대표의 도전을 누르고 내각제를 만들어 낼수 있을지 관망하고 있다. 또 결론이 어떻게 나든 노 대통령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수의 견해다. 다만 내각제가 안되면 대권이 YS에게 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유의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이 어느 정도까지 정확한지 잘라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민자당측의 대권갈등과 역학구조의 본질은 대충 이런 바탕위에 놓여 있으며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변조를 드러낼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문제는 이같은 다툼의 구조와 정치지도자들간의 불신·권모술수가 국민정서 및 시대의 흐름에 얼마나 부합하느냐는 점이다. 사실 해방 후 정치지도자들의 어정쩡한 이해다툼이 지금처럼 샅샅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은 별로 없었다.
○끊임없는 이해다툼
지금 내각제를 둘러싸고 지도자들이 보이는 사적 이익과 공적 명분의 혼란은 어느 틈에 「꼼수」 「더블 플레이」가 난무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국민앞에 당당하게 펴놓고 지도자간에 타협·조정하는 정치다운 정치는 실종된 것일까. 이런 분위기는 필시 정치적 무관심과 면종복배의 비도덕적 정신 풍토를 조장할 것이다.
후계자를 미리 정하면 곧 권력의 중심이 흐트러진다는 불안과 불확실한 후계자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1,2인자간의 이해다툼이 국정의 핵심을 차지하는 비정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답답하기만하다.<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