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까 팔까 … 가격 동향 눈치보기 치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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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정부의 잇따른 규제로 주택시장이 대체로 침체한 가운데 매도자와 매수자 간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매수세가 얼어붙었는데도 매도자들이 여전히 상승 기대감이 있어 가격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기존 주택시장과 달리 분양시장에는 정부 대책의 파장이 다소 덜한 편이다. 정부가 분양가를 내리기로 했는데도 수도권 분양시장엔 청약자들로 북적이는 반면 지방은 찬바람을 맞고 있다. 업체들은 인.허가 지연 등으로 분양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발을 구른다.

◆매도·매수 희망가격 1억원 이상 벌어져=매도자들은 상승 기대감을 놓지 않고 시장의 눈치를 보며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 개포동 개포공인 채은희 사장은 "매도자들은 급할 게 없어 호가를 낮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시행된 2주택자 중과세를 피하려는 매물 등 급한 매물은 지난해 대부분 처분했다는 것이다.

매수세가 위축됐다고 수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매수는 하지 않더라도 대기 수요로 남아 있다. 분당 해내밀공인 이효성 사장은 "가격 동향을 물어보는 매수자들의 문의는 끊이지 않는다"며 "가격만 맞으면 언제든 구입할 대기 수요는 남아있다"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 황토공인 최재영 사장은 "매도.매수 희망가격 차이가 벌어져 40평형대는 1억원 넘게 차이 나고 거래는 거의 없어 호가와 시세가 뒤죽박죽"이라며 "매도.매수자 간 긴장관계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다시 상승세가 커지거나 하락세로 돌아서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매도.매수자 간 줄다리기 균형이 깨질 것으로 본다. 분양가 상한제 확대 등이 입법화되고 대출 규제 등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하면 하락세로 돌아서고, 정부 대책에 맥이 빠지면 상승세가 힘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가격은 안 떨어지고 거래만 급감=매도.매수자 간의 치열한 신경전으로 거래는 크게 줄어도 가격은 예상만큼 빠지지 않는다. 거래량과 가격은 비례 관계여서 가격이 내렸던 2004년(-0.15) 거래량이 14만4618건으로, 10.2% 올랐던 2003년(20만2951건)보다 30%가량 줄었다.

1월 아파트 거래량은 크게 줄어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30%에 불과하다. 강남구의 아파트 거래건수는 92건으로 지난해 1월(527건)의 20%도 되지 않는다. 송파구의 1월 거래건수(92건)도 지난해 1월(345건)의 26% 수준이다. 올 1월 거래건수는 아파트값이 하락세를 보인 때보다 적다. 0.6% 내린 2004년 1월 강남구의 거래건수는 437건이었다.

송파구 잠실동 송파공인 최명섭 사장은 "4000가구에 가까운 대단지인 잠실 주공5단지에서 1월에 한 건도 거래되지 않았다"며 "재건축 단지들에서 일부 호가가 하락세를 보일 뿐 일반 아파트의 호가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매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입주 중인 송파구 잠실동 레이크팰리스(2678가구)에서 팔려는 주택은 20여 가구에 불과하다.

◆분양시장은 수도권.지방 '따로'=정부가 민간택지에 분양가를 규제하는 분양가 상한제를 확대해 가격을 낮추기로 했는데도 수도권 민간택지 청약열기가 뜨겁다. 1순위 마감 행진이 이어져 금호건설이 최근 인천시 중구 운서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에 분양한 영종어울림은 1순위에서 대부분 마감됐다. 33평형은 인천 1순위에서 2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중대형 평형도 선전하고 있다. 이 아파트 46평형은 수도권 1순위에서 마감됐다. 순위 내 청약경쟁률이 낮았던 서울 중구 회현동 42~91평형 주상복합 SK건설 리더스뷰남산의 경우 계약 20일 동안 85% 정도의 계약률을 보이고 있다.

반면 지방에선 업체들이 사업을 접을 정도다. 한 중견 건설업체는 올해 지방 분양물량을 2000가구 줄이고 부산과 대구의 분양계획을 포기했다. 지난달 대구에서 분양한 A업체 단지 계약률은 30% 이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구에서 분양한 다른 업체 관계자는 "미분양이 쌓일 정도로 분양이 잘 안되는 데다 1.11 대책까지 겹쳐 수요자들이 꿈쩍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수요가 많은 수도권에선 청약가점제가 도입돼 청약자격이 나빠지기 전에 분양받으려는 수요자들이 적극적으로 청약에 나서고 지방은 심리적으로 더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맘은 급한데 분양은 게걸음=분양물량이 예상만큼 쏟아지지 않고 있다. 업체들이 9월 분양가 상한제 확대 전에 분양을 서두르지만 인.허가 등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화성 동탄신도시와 파주 교하지구 분양은 자치단체 분양가자문위가 구성될 때까지 중단돼 있다. 다음달까지는 구성될 예정이다.

인천 송도지구는 시장 동향을 살피느라, 서울 가재울뉴타운 등의 재개발단지들은 조합 내부 문제 등으로 분양을 늦추고 있다. 청주 등에서는 자치단체의 분양가 규제로 분양일정이 늦어지고, 천안에선 분양가 소송으로 분양이 중단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이 늦어지면 상한제 확대 시행을 앞두고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소화불량에 걸릴 수 있다"며 "빨리 분양하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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