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는 순수한 자세로”/한적 새 총재 강영훈씨(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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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도 살아남기 위해선 변화할것/「강총리」·「공총리」는 기자가 만든말
대한적십자사 김상협 총재의 후임으로 제18대 총재로 내정된 강영훈 전총리(69)는 3일 지난 7개월여동안 사용해 온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 416호실 사무실에서 조용히 책상정리를 하고 있었다.
강 전총리는 『적십자총재에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는 기자의 인사에 『아직 명예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의 인준도 받지 않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특유의 잔잔히 미소띤 얼굴이 매우 밝아 보인다.
강 전총리는 지난 78년부터 2년여 원장을 지냈던 외교안보연구원의 고문으로 되어있다. 그는 이에 대해 『작년말 총리직을 물러난후 갈 곳도 없고 해서 임동원 원장께 무료로 사무실하나 임대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고문직함까지 주었다』고 설명했다.
­적십자사 총재에 선출되신 소감은 어떠하십니까.
『부덕한 사람이 중책을 맡게되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6년간 이 자리를 지켜오신 김상협 총재의 업적에 누가 될까 두려움마저 느낍니다』
­남북총리회담도 곧 재개되고 적십자 회담도 다시 열리지 않겠습니까. 이런때 실향민이신 강 전총리께서 적십자사 총재를 맡게된 것은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사업을 어떻게….
『적십자사업이란 것이 정치성을 배제하고 인도적 차원의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남북이산가족의 아픔을 해결하는 일이야말로 적십자사업에 꼭 맡는 일입니다. 국제사회도 이제 냉전에서 화해협력 시대로 접어들고 남북이 조금있으면 유엔에 함께 들어가게 되는등 여건은 어느때보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산가족문제는 과거보다 한차원 높은 수준에서 접근되고 해결되기를 희망합니다. 적십자사 활동범위를 넓히고 적극 대처해 나가겠습니다.』
­제4차 남북총리회담이 이달 하순 평양에서 열리는데 어떻게 전망을 하십니까.
『다소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우선 주변정세가 크게 달라졌지 않습니까. 북한이 이미 우리가 끈질기게 제안했던 유엔동시가입에 동의했고…. 이같은 변화가 온 것은 국제환경이 달라지고 있고 자신들의 국내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어쩔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난날을 심각하게 반성하는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말합니까.
『유엔가입 문제만해도 북한이 믿었던 것은 소련과 중국의 거부권이었습니다. 소련은 이미 우리와 수교까기 했고 북한측에 여러차례 개방을 요구하고 유엔가입을 종용했습니다.
계속 평양측 입장을 지지해오던 중국마저도 화해무드로 흐르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거역하지 말라고 충고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변화가 북한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쉽게 자존심을 버리고 개방·개혁쪽으로 방향을 잡을까요.
『살아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김일성식의 주체체제를 유지하는 범위내에서 말입니다. 북한이 현재 당면한 문제는 정치적으로는 세습제 확립이고 경제적으로는 민생해결입니다. 매우 어려운 단계이지요. 뭐랄까 활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하여튼 활로를 개척할수 밖에 없는데 그게 어려운 상황입니다. 평양지도자들은 지금까지 남한을 해방시키기 위해선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한다고 북한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해왔는데 이제는 그 강요가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 와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측이 취할 태도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남북대화는 인내와 끈기로 해나가되 성심성의껏 인간적으로 해야됩니다. 기교를 부리거나 공작적 차원에서 대화전략을 세워서는 안됩니다. 말 그대로 민족의 양심으로 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민족화합과 통일을 성취해야한다는 순수한 자세로 임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난 세차례의 총리회담에서 북한측과 접촉해보니 저쪽은 철저히 선전적이고 대남혁명전략을 그대로 갖고 나왔습니다. 한국정부를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말입니다.』
­세차례 회담을 해본 결과 북한측의 의도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1차회담을 끝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너무 방어적이었다 싶어 평양에서 열린 2차회담때는 「대남적화혁명전략을 버리라」고 따끔하게 정곡을 찔렀더니 막 화를 내더군요. 그러고는 남북불가침선언 문안을 갖고와 당장 서명하라고 제안했습니다. 남북불가침선언이란 것이 미국과 평화조약을 맺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수단이란 것을 알고 있는 제가 응할리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남북통일이 안되는 이유는 미군이 주둔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주한미군만 나가면 남한체제는 무너지고 민중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식 공산통일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증거지요.』
­이제 국내문제로 화제를 돌려 보겠습니다. 6공이 제1의 국정지표로 내세운 민주화는 제대로 추진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민주화는 확실하게 진전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하는 수준에 도달했느냐 하는 것은 별개문제입니다.
우선 독재라는 말은 완전히 없어졌지 않습니까. 언론자유도 더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오히려 언론의 책임과 자율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까지 와 있습니다.』
­재임기간중 「강」총리,혹은 「공」총리라는 말을 들으셨는데….
『제가 법질서회복과 공권력확립을 여러차례 강조하다보니 기자양반들이 그런 별명을 붙여준것 같은데…(웃음)사실 취임초기는 모든 것이 「혁명적」상황이었습니다.
각계각층에서 불같이 일어났던 욕구분출,그리고 모든 것을 집단의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억지,이런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칫 잘못하면 민주주의 체제 자체에 위험이 닥칠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질서가 요구됐고 공권력이 필요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곧 질서가 아닙니까. 91년에 들어와서는 이런 무질서 분위기가 좀 가라앉아 「이제는 공권력을 강조할 시기는 지나갔구나」싶어 대통령께 여러차례 사의를 표명했었습니다.』
­총리 재임기간중 못다하신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여러가지가 있지요. 질서 확립이 미흡했고 계층간 지역간 불균형해소에 미흡했고…. 책임감을 느낍니다.
국민들에게 내일의 비전을 제시하신 대통령의 첨단과학개발의지,그리고 민주시민양성을 위한 교육내실화 등에서 제대로 보좌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부덕의 소치로 후임자(노재봉 전총리지칭)가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도중하차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못다한 것을 대신 하려고 하다가…. 선임자인 제가 변변치 못해 그렇게 됐습니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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