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사회도 급변/남북화합 “아리랑”/대화채널개방한 민단­조총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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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코리아탁구 계기 화해의 악수/남북 상호방문 창구역할 노력/자주 만나 통일 다짐도
세계탁구대회 코리아단일팀구성(4월)과 유엔 가입신청 등 북한의 현실적인 정책노선 변경은 재일동포사회에도 새로운 남북화합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일본내의 38선」으로 표현되는 대한민국 재일거류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는 남북한의 전위부대로 그동안 격렬히 대립해 왔었다. 그러나 세계탁구대회 단일팀 구성을 계기로 민단과 조총련은 공동 응원때 설치한 대화채널을 계속 열어두고 사적인 만남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통일행사에 대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단은 지난달 중순 통일원과 협의,「북한 주민접촉 승인」을 받고 일본을 방문,일본내 친북한계 조직이나 친북인사를 접촉하는 경우 이를 적극 도와주기로 방침을 정하고 일본 전국 47개 도부현 각지부에 이같은 지침을 시달했다.
민단내 대북대화창구는 「조직국」으로 조총련 카운터파트인 「정치국」 부원들과 지금도 저녁식사를 같이하면서 사실상 「남북상호협의기구」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 5월 하순 세계탁구대회 종료직후 민단 정몽주 조직국장과 조총련 황병태 정치국장이 동경시내 한 중국음식점에서 만나 코리아 응원가 『아리랑』을 함께 부르면서 남북통일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민단측은 8·15광복절을 전후해 민단과 조총련이 각각 50명씩을 뽑아 판문점을 경유해 서울∼평양을 상호방문하자는 제안을 했다.
북측의 「범민족대회」나 남측의 이같은 「통일대행진」 제의는 상호불신속에 아직 결실은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철학회와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가 주최하는 「한민족철학자대회」(21∼24일)에 북한측이 10명의 학자를 포함,20명의 대표를 서울에 보내겠다고 통보한 사실은 민단과 조총련의 화합분위기 조성에 큰 힘이 되고있다.
한민족철학자대회를 추진해온 소광희(서울대)·송상용(한림대) 교수는 지난 2월초 중국 북경에서 열린 학술대회 참가학자를 통해 북한측 학자 10명을 초청한다는 의사를 전달한바 있으나 회답이 없자 주최측 대표자격으로 무턱대고 지난 5월말 조선대학교를 찾았다.
마침 개교 35주년을 맞아 준비행사에 한창인 교정에 들어선 양교수를 미리 편지로 연락받은 박용곤 부학장·현원석 정경학부장·김철앙 철학부장 등 3명의 교수가 반가히 맞이했으며 새로 준공한 체육관과 이대학 자랑거리인 기념관 건물을 두루 보여주며 환대했다. 교정 곳곳에 주체사상의 구호가 요란한 이 학교에 해외동포를 빼고는 한국학자와 기자가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고 이들은 양교수의 용기에 감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번 대회가 성사되면 이들 3명의 학자가 조총련 간부로서는 처음으로 「조선적」을 바꾸지 않고 서울을 방문하는 「재일조선인」이 되는 셈으로 이곳 친북 교포사회에서는 큰 사건으로 주목하고 있다.
한편 「한민족철학자대회」는 북측의 동의로 성사의 빛이 보이지만 이밖에도 무턱대고 일본을 방문,남북대화의 길을 트고자하는 민간단체가 최근 부쩍 늘어 문제가 되고있다.
지난 4월20일 「장애자의 날」을 계기로 서울∼평양간 휠체어종단을 추진하려다 조총련측의 무성의로 빛을 보지못한 것은 실패케이스의 대표적 예.
한반도종단 기록을 갖고 있는 장애자 천대철씨(27·경남 삼천포시 동동 312의 2)에게 판문점∼평양간을 북한측 장애인 2명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달리겠다는게 본래의 뜻이었다.
그러나 「장애인통일염원 휠체어 남북종단계획」 추진위원회 고형호 위원장(52·장애자협회 경남지부장)은 지난 3월말 사전연락도 없이 통일원의 「북한접촉승인서」와 「사업계획서」만을 들고 조총련 본부의 문을 두드렸다.
조총련측도 열성적인 접촉의사에 감복,이들을 본부내로 불러들여 사업계획을 듣는 제스처를 보이긴 했으나 그이후 감감무소식이다.
민단측에 따르면 이와 유사한 케이스는 이밖에도 4∼6건이 「대기중」으로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중이라고 한 관계자는 털어놓았다.
북한 농촌지역과의 자매결연을 목표로 김왕호씨(41·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육류가공업) 등 주민대표가 지난달 중순 일본 오사카 민단지부를 방문,협조를 구한 것은 통일원의 접촉승인도 받지않은 「무작정 방일」의 예.
민단 황영보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통일원은 승인(북한주민접촉)만하고 추진은 다른 기관에서 하니 모르는 일』이라고 무책임한 자세를 보이는 통일원당국의 무성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민단의 「창구일원화」 논리는 또 하나의 관료주의적 사고표현으로 남북 민간간의 자유스런 접촉을 막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재일동포들은 우려하고 있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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