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사진가를 기리려 사진 밖으로 나온 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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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자 백지선이 촬영한 김수남씨의 1997년 모습.

사진작가 김수남(1941~2006)의 1주기를 추모하는 공연과 유작전이 7~20일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지하1~지상 2층에서 열린다 (02-736-1020).

그는 지난해 2월 태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신년맞이 축제를 촬영하다 뇌출혈로 숨졌다. 평소 "현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죽는 일이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말해왔으나 57세의 나이는 너무 아까웠다. 고인은 다큐멘터리 사진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특히 1970년대 중반부터 매달려온 한국의 굿 기록은 20권 분량의 전설적인 사진집 '한국의 굿'(열화당)으로 남았다. 추모 행사는 김수남기념사업회(이사장 김인회 전 연세대 교수)와 임영민속연구회, 민족미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한다. 공연 명칭은 '김수남을 위한 오구, 사진 밖으로 나온 예인들'. 고인이 생전에 자주 촬영하고 교분을 맺었던 큰 무당과 춤꾼들이 직접 넋굿과 공연을 펼친다. 유작전 '사진 굿 魂'은 전통예술 기록과 사진예술 양쪽에서 대표적인 고인의 작품을 골라 보여준다. 기념사업회는 전시 개막을 앞두고 오늘(5일) 고인의 홈페이지(www.kimsoonam.com)를 오픈한다.

조현욱 기자

공연 작가가 촬영해 온 큰무당·춤꾼들 직접 씻김굿·살풀이

83년 황해도 큰 무당 김금화의 배연신굿. 고인과 교분이 깊은 김씨는 이번에 진오기 굿을 자청했다.

"혼이로다 넋이로다~ 무주공산 삼원혼령. 혼이라도 다녀가요 넋이라도 다녀가요~."

넋을 달래는 황해도 진오기굿 한 자리가 7일 오후 인사아트센터 지하전시장에서 벌어진다. 평소 고인과 친분이 깊었던 황해도의 큰 무당 김금화(76.중요무형문화재 서해안 배연신굿 기능보유자)가 베푼다. 그는 같은 굿판 식구처럼 김수남을 아꼈다. 해가 바뀌면 "집에 술 담아놓았으니 들나물에 밥이나 먹으러 오라"고 청하곤 했다. 김수남의 죽음을 누구보다 애통해 하며 본인이 진오기굿을 꼭 해주고 싶어했다.

이처럼 이번에 벌어지는 네 차례의 굿판은 모두 공연이 아니라 실제 넋굿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장산도 씻김굿은 강부자(70.전남 지방문화재 장산들 노래 보유자)등 대를 이은 장산도 당골(마을 무당)들이 한다. 이 굿은 조상의 넋을 씻기는(정화하는) 의례이자 산사람을 위한 신명나는 잔치마당이기도 하다.

제주도 시왕맞이는 서순실(48.제주 무형문화재 영감놀이 전수교육 조교)씨가 주무가 되어 펼친다. 1981년 21세 처녀 서순실은 제주도의 내로라는 무당을 모두 모시고 무당이 되기 위한 첫번째 신굿을 했다. 굿판은 열흘간 벌어졌고 사진 기자였던 김수남은 이 현장을 떠나지 못해 본사에 시말서를 쓰기도 했다. 서순실은 삼촌처럼 든든히 여기던 김수남을 위해 이번에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진오기 새남은 새남굿 전수조교인 이상순(60)씨가 한껏 격식을 차려 벌인다. 원래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죽음의 의례다. 의식이 장엄하고 복색과 상차림이 화려하다.

굿이 아닌 공연 역시 마음을 담아 혼령을 달래는 내용이다. 이애주 서울대 교수(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의 넋살풀이가 그렇다. 무형문화재 살풀이춤 보유자였던 고 김숙자의 딸 김운선이 펼치는 승무와 도살풀이도 마찬가지다. 굿에서 비롯한 춤을 종교적 깊이와 신명을 잃지않고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이다. 무형문화재 가야금 산조 보유자였던 고 성금연의 딸 지성자의 가야금 연주도 관객들로선 좋은 기회다. 80년 남편을 잃고 작곡한 '눈물이 진주라면'은 전체가 진계면조로 되어있어 한과 애틋함이 절절하다.



유작전 "삶·죽음, 고통·환희 집약" … 한국 등 굿 사진 40여 점

"내 자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굿이란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아마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좌절과 희망, 이런 것들을 가장 극렬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굿판일게다. 어차피 사회와 시대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그래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까지 변해버린 나의 신앙체계. 이것을 찍으며 하나의 증언,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기를 꿈꾸었다."<김수남 '한국의 굿' 중에서>

유작전 '사진 굿 혼(魂)'의 1층 전시는 위의 글에 나타난 대로 굿의 증언자, 기록자로서의 작가를 보여준다. 이곳엔 한국의 굿 20여점과 예인들 사진 35점을 걸었다. 굿 기록의 시작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전국을 휩쓸며 미신타파를 앞세워 전통문화 말살 행위가 벌어지고 있을 시기였다. 김수남은 무속 현장이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를 사진예술로 승화시켰다. 한낱 미신으로 여겨졌던 굿은 그 덕분에 한국인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2층에선 아시아의 굿 25점을 보여준다. 작가가 1990년부터 찾아다닌 아시아 곳곳의 전통문화 현장 사진이다. 중국.인도.네팔.미얀마.베트남.스리랑카의 오지다. 개발과 근대화에 밀려 사라져가는 아시아 소수민족의 전통 문화는 그의 필름 속에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선 김수남의 사진을 연대기적으로 배열한 35점을 건다. 지난해 초 태국의 작업현장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촬영했던 사진도 여기서 처음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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