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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미국인과 비슷한 능력으론 이길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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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만난 사람 = LA 중앙일보 장연화 기자

한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4년제 대학 총장으로 선출된 강성모(미국명 스티브 강.61) 박사는 '학자'보다 '도전자'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언뜻 봐서는 유순한 학자 같은 인상이지만 실제로 만나 대화해 보면 왜 '도전자'로 불리길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1969년 24살 때 미국으로 유학 간 그는 "미국인들과 비슷해서는 기회가 없다. 그들보다 뛰어나야만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스승의 말씀을 새기며 이를 악물고 살아왔다. 그렇게 노력한 지 37년 만에 캘리포니아 주립(UC) 머시드 대학 총장 자리에 올랐다. 다음달 1일 부임을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한인 이민 100년사에 처음으로 대학 총장이 나왔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고맙다. 나 역시 세계적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계열 캠퍼스 총장을 맡게 돼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다. 한인 2~3세들에게 귀감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 동시에 새 일을 맡아 가슴이 설레는 것도 사실이다. 업무 개시까지 아직 한 달이 남았지만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 마음이 바쁘다. 머시드 대학 총장으로 임명된 후 대학교 설립 후원자들과 교직원 대표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아시아인으로도 드물게 대학 총장 자리에 올랐는데.

"캘리포니아 주립 10개 캠퍼스에 재직 중인 교수 중 아시아 출신은 6% 정도다. 하지만 학과장을 비롯한 책임자급에 있는 교수는 1.5%에 불과하다. 캘리포니아주에 많이 거주하는 아시아 사람들을 감안할 때 아직도 낮은 비율이다."

-신임 총장으로서 머시드 캠퍼스를 어떻게 운영할지 말해 달라.

"우리 대학은 요세미티 국립공원 인근의 신설 대학이다. 이 지역은 10년 전에 비해 인구가 60%가량 늘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다. 현재 1300명 선인 학생 수가 올가을에는 2000명으로 늘어난다. 인문.사회학과 공학 분야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해 20년 후 학생 수를 2만5000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최종 목표다. 대학 부지는 이미 어느 정도 확보돼 있다.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도 교육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할 방침이다."

-가장 역점을 둘 일은.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5년 내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또 생명공학 연구를 위해 '바이오 밸리'를 캠퍼스에 만들고 싶다. 농업이 주된 산업인 지역에 위치한 대학의 특징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다. 제조업이나 공장을 유치해 지역발전에도 이바지하길 기대한다."

-현재 미국 대학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미국 대학은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주고, 토론문화와 함께 학풍도 열려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고민도 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는 초중등 교육에서 수학과 과학 교육이 대학이 요구하는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 미국이 21세기에도 테크놀로지 부문에서 세계를 선도해 나가려면 수학과 과학 교육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그동안 미국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오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왜 없었겠는가. 2001년 UC샌타크루즈대 공대 학장으로 임명됐는데 교직원들이 나의 영어 악센트를 문제 삼아 빈정거리는 등 나름대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온 1세대 이민자다. 지금의 기성세대보다 후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계에도 본보기가 될 일종의 역할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가 후세들에게 길을 터주고 계기와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개인적으로 중국계로 버클리대 총장을 지낸 창 린 티엔 박사를 존경한다. 나도 그처럼 교육계의 리더로서 모범을 보이고 싶다. 그것이 한인으로서의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

-한인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노력하면 꿈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 같은 이민자 출신이 캘리포니아 주립대 총장이 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아직도 '기회의 나라'임을 말해 준다. 인종차별 등의 장애물이 존재한다 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실력을 인정받고 꿈을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열심히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유학 초창기 나의 지도교수가 해준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필리핀 출신이었던 그는 '백인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아시안은 선택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들보다 훨씬 뛰어나야만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 후 나는 치열한 노력으로 미국 전자공학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금도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 내게는 지금도 기회일 뿐이다."

-한인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총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외부에서 자금을 많이 끌어와 학내 교육 및 연구 분위기를 북돋우는 것이다. 과거 창 린 티엔 버클리대 총장은 재임 중 화교 사회에서 많은 재정 지원을 받았다. 나 역시 한인 기업과 한인 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개인이나 기업이 우리 학교에 장학기금이나 연구기금을 후원하겠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 이는 한인들이 미국 주류사회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미국 내 한인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한국 대학에 대한 충고는.

"21세기는 '3개의 T'가 키워드가 될 것이다. 3T는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기술), BT(Bio Technology.생명공학), NT(Nano Technology.극미세 기술)다. 3T 시대에는 핵심기술이 서로 연계돼 미래의 전자.정보통신.기계.생명과학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술들이 융합된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 산업체와 대학 간의 산학협동이 필수적이다. 특히 나노기술의 발전 가능성은 무진장이다. 한국 대학은 이런 점에 중점을 두고 이공계 학생들의 수학.과학 기초실력을 탄탄히 다져 줘야 한다."

-강단만 고집한 게 아니라 실제로 기업을 만들기도 했는데.

"내가 개발한 기술로 벤처기업을 하나 창립했다. 모바일 디바스 칩(GMOS Inc)이라는 회사인데 현재 공동 창업자로 돼 있다. 일리노이대 재직 시절부터 연구해 개발한 반도체 칩 기술을 응용해 휴대기기에 들어가는 내장용 칩을 조만간 생산할 예정이다."

-어떤 평가를 받을 때 제일 기분이 좋나.

"지난 5년간 UC샌타크루즈의 공대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가슴이 뿌듯하다. 나는 대학이 좋다.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 일리노이대(어바니 샴페인 캠퍼스) 교수 시절 가르쳤던 제자들이 생각난다. 연세대 전자공학과 정성욱 교수, 고려대 전자공학과 김철우 교수, 중앙대 전자공학과 백광련 교수, 광운대 컴퓨터학과 최욱철 교수 등이다. 학자로서 평생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LA 중앙일보 장연화 기자

강성모 총장은

1945년 2월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경신중.고교를 거쳐 연세대 공과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4학년 때 당시 박대선 총장의 추천으로 뉴저지주 페어리 디킨슨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69년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 주립대를 거쳐 75년 버클리대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80년대 초반 벨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32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85년부터 일리노이대 공대 전자공학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95년 학과장으로 승진했다. 5년간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전기공학과를 교수 90명, 학생 2000명의 초대형 학과로 발전시켰으며 대학 순위도 크게 끌어올렸다. 이후 그는 미국 학계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UC샌타크루즈 공대학장으로 부임, 스탠퍼드대학과 견줄 만한 산.학 협동의 산실로 끌어올렸다.

90년 국제전기전자학회(IEEE)의 최고 영예인 석학회원(fellow)으로 뽑혔다. 97년 미국과학진흥협회(AAAAS)와 2000년 미국컴퓨터협회(ACM) 펠로로 잇따라 임명되며 이들 학회가 주는 상을 수상했다. 14개의 기술 특허를 갖고 있으며 9권의 저서 외에 각종 저널에 100여 개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2006 한민족세계과학기술자대회'에서'연구관리의 세계화'란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 차명아(61)씨와 딸 제니퍼(31.사회학 연구원), 아들 제프리(27.경영학석사 과정)를 두고 있다. 여행과 하이킹, 오페라 감상이 취미다. 중국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을 도와 독립운동을 했던 강대현 선생이 할아버지다.

UC머시드는

캘리포니아주가 세워 운영하는 열 번째 캠퍼스로 2005년 9월 개교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인근에 있다. 공과대.자연과학대.인문대로 구성돼 있다. 현재 학생 수는 1300명. 매년 정원을 800명씩 늘려 20년 뒤 2만5000명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2005년도에 받은 첫 신입생의 고교 평균 내신성적(GPA)은 3.58, 대입수능시험(SAT) 평균 점수는 1139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