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차세대 인터넷시대 '그리드'기술 뜨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9면

우주에서 지구로 도달하는 무수한 전파들을 해석해 외계인의 존재를 찾고 있는 '세티앳홈(SETI@home) 프로젝트'(본지 9월 4일자 E13면 참조). 1999년 미국 버클리대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는 초대형 수퍼컴퓨터 대신 4백만여명에 달하는 '개미군단'의 PC들이 동원되고 있다.

세티앳홈의 화면보호기를 내려받은 참가자들의 컴퓨터가 사용되지 않을 때 자동적으로 전파를 나눠 분석하는 방식이다. 전세계 컴퓨터들을 연결해 강력한 수퍼컴퓨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핵심 기술이 바로 그리드(Grid)다.

그리드의 사전적인 의미는 격자. 최근 들어 실생활에 점차 가치를 더해가며 차세대 인터넷 시대를 이끌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시카고 대학의 이언 포스터 교수에 의해 정립된 개념으로, 남아도는 컴퓨터 용량뿐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와 중앙처리장치는 물론 각종 소프트웨어를 나눠쓰는 공유의 신개념이다. 그 원리는 큰 일감을 잘게 쪼개 수십, 수백대의 PC에 나눠줘 계산하게 한 뒤 다시 그 결과를 종합하는 것이다.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는 2000년 이후 신약 설계를 위해서 새로운 수퍼컴퓨터가 필요했지만 이미 한 대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회사가 사용 중인 수 천대의 PC가 보유한 유휴 컴퓨터 성능이었다.

40만달러를 들여 그리드 컴퓨팅 시스템을 갖췄고 결국 2억달러를 절감할 수 있었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펜티엄4 컴퓨터를 이용해 유전자상의 돌연변이를 인지하는 데 3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2백50대의 컴퓨터를 이용했더니 4일로 대폭 줄어든 것이다.

전 세계의 과학 및 정보기술(IT) 관련 종사자들이 차세대 기술로 그리드 컴퓨팅에 관심을 기울임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에 발맞추어 적극적인 그리드 인프라 구축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부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을 주축으로 2006년까지 3백50억원을 투입, 국가 그리드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이다.

KISTI 박형우 그리드연구실장은 "그리드는 고도의 협업환경을 지원하기 위한 고도의 컴퓨팅 기술"이라며 "그리드가 완성되면 네트워크 상에 흩어져있는 깨알 같은 정보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어 천재가 평생해야 가능한 일을 단시간 내에 이뤄낼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13개국 41개 연구기관은 최근 보유 중인 3천대 이상의 고성능 컴퓨터를 그리드 기술로 묶은 결과, 무려 10테라플롭스(1테라=1천기가바이트)에 달하는 초고성능 수퍼컴퓨터의 능력을 확보했다. 이는 1초에 10조 번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과학적 활용 단계에 머물던 그리드 컴퓨팅을 일반 기업에서도 활용할 길이 열렸다. 오라클은 최근 기업 내 중소형 서버들을 그리드 기술로 연결해 유휴 자원 활용을 도와주는 통합데이터베이스 제품 '오라클10g'을 처음으로 출시했다. IBM도 그리드 컴퓨팅 기술의 상업화에 주력하고 있다.

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