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대표부 북한사람들/사무실겸 숙소서 집단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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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족포함 21명… TV보는게 유일한 낙/오남철의 흑인추행사건 이후 부부동거 허용/자녀는 「서방오염」막으려 4살되면 본국으로
미국내의 북한사람들은 외롭고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북한사람이라고 해야 뉴욕 맨해턴에 살고 있는 주유엔 북한대표부가족 21명이 고작이다.
박길연 대사와 허종 차석대사·참사관 2명·1등서기관 2명·2등서기관 2명·3등서기관 1명·행정요원 2명등 10명의 공관원부부와 어린이 한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지난 3월 유엔사무국이 발간한 각국 대표부 현황은 밝히고 있다.
세살이 채 안된 어린이 한명은 누구의 자녀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키로 결정함에 따라 북한대표부의 공식활동과 직원들의 생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이들의 생활실상은 잘 공개되지 않고 있다.
북한대표부 직원들이 집단생활을 하며 외부의 사적활동을 극히 제한하고 있고 다른 외교관이나 접촉하는 교포들에게도 사생활을 전혀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대표부를 조금씩 알고 있는 유엔이나 교포소식통들의 단편적 정보를 종합하면 북한대표부직원들은 외롭고 폐쇄적 생활을 하고 있다.
북한대표부는 뉴욕 맨해턴 86번가 225번지 15층 아파트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의 11·12·14·15층 일부씩을 84년 3월부터 월3만4천달러에 세들어 사는데 사무실과 직원숙소를 겸하고 있다. 11·12층이 사무실이고 14·15층이 숙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인의 출입이 극히 제한을 받는 이 아파트에서 대표부 가족들은 집단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73년 5월 유엔대표부를 개설한 북한은 83년까지 남자직원들만 파견,집단생활을 했으나 3등서기관 오남철의 흑인여자 추행사건이 터진후 이 건물을 임대해 부인동반생활을 허용하고 부인들을 타이피스트등 행정보조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사무국 현황에 따르면 2등서기관 박옥란과 3등서기관 이용희는 허종 차석대사와 김문덕 2등서기관의 부인으로 되어 있어 두쌍의 부부외교관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열쌍의 부부가 살면서 어린이가 세살짜리 한명밖에 없는 것은 유아교육이 시작되는 네살이면 본국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해야하는 북한의 교육정책 때문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해외근무자,특히 서방국 근무자들의 자녀들에 대해 부모들의 변절과 어린이의 서방문화오염을 막기위해 어려서부터 본국교육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북한대표부의 움직임을 보면 대체로 세가지로 구분된다.
그 하나가 본연의 임무인 유엔관계다. 박길연 대사가 맡고 있는 유엔업무는 업저버 자격인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유엔기구에서의 활동보다는 남한대표부활동에 대한 관심과 이에 대한 대응에 있다.
또 하나는 허차석대사가 부임하면서 강화된 것으로 보이는 대미관계의 창구역할이다.
허대사는 미국이 대화채널 격상에 반대하고 있어 한계가 있지만 한국전쟁당시 실종 미군유해송환이나 한반도 관련 세미나 등에 참석,북한의 입장을 밝히며 미국인들과의 접촉을 확대하고 있다.
이밖에 최근 활발해진 것이 본래 주재 목적에는 어긋나지만 미국을 방문한 북한인사들의 안내를 이용,재미한국교포들과의 접촉창구역할이다.
지난해 뉴욕 남북영화제때 뉴욕을 방문한 영화인들과 지난 5월말부터 한달간 미국을 방문한 한시해 조평통 부위원장일행을 통한 광범한 교민접촉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같은 공적 활동외에 북한대표부 직원·가족들의 외부활동 사생활은 극히 제한되어 있고 폐쇄적이라는게 많은 소식통들의 얘기다.
외국에 부임할 경우 현지를 알려는 노력이 최소한 북한유엔대표부 직원 및 그 가족들에게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뉴욕에 친북한동포 인사들도 있지만 이들조차 이들 대표부가족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거의 없고 외부출입이라야 공동생활을 위한 생필품구입 등이 고작이라는 것이다.
한 북한소식통은 북한대표부 가족들의 유일한 즐거움이 사무실겸 숙소에서 텔리비전을 보는 것이라고 전한다.
유엔에서 활동을 하는 직원들도 다른나라 외교관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점심때가 되면 공동식사를 위해 사무실로 돌아가고 꼭 두사람이상 짝을 지어 다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북한대표부직원·가족들의 외롭고 고립된 생활이 북한정책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북한과 외교적 상호주의 협정이 없는 미국정부의 제약에도 원인이 있다.
북한대표부 직원들은 미국과 현지외교관의 이동의 자유에 대한 협정이 없기 때문에 소련·중국·쿠바대표들과 마찬가지로 맨해턴 중심인 콜럼버스서클에서 25마일 밖으로 이동하려면 미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입장에서 신변의 안전을 고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한국대표부도 마찬가지지만 유엔의 업저버국가로서 정식외교관 대우를 받지 못해 면세혜택 등 외교관특권이 없는 것도 경제사정이 결코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대표부 직원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을지 모른다. 미국내 유일한 북한사람들인 북한대표부직원·가족들의 외롭고 폐쇄적 생활이 오는 9월 확실시되는 남북한유엔가입후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의 외로운 생활을 조건지우는 여러요인중 외교관신분부여를 제외하곤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나 외교관들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는 북한의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당장 기대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생활에도 금방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유엔 주변사람들의 안타까운 전망이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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