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영화 누리는' 인도 … 매주 1억 명이 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사진=최승식 기자]

지난해 한국 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60.3%(서울 기준)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자국 영화 시장점유율이다. 그렇다면 1위는? 인도다. 인도는 94.58%(2005년)의 자국 영화 시장점유율로 미국과 더불어 90%를 넘는 유이한 나라다. 매주 1억명 이상이 영화관을 찾는 이 '거대한 시네마 천국'을 가봤다.

열여덟 살의 대학생 사비아 라티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도계 이민 2세다. 그는 지난달 18일 남아공을 떠나 부모의 고향인 인도 뭄바이에 도착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영화와 TV 드라마를 제작하는 '시네비스타' 프로덕션. 여기서 라티프는 함께 메디컬드라마 '산지바니'를 촬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남아공에서 현지 인도인들을 대상으로 열린 '미스 볼리우드' 선발대회에서 우승했고 함께 뽑힌 '미스터 볼리우드'와 고국 땅을 밟았다. 숙식 제공 외에 출연료는 없다. 드라마가 실패하면 한 푼도 못 받고 짐을 싸야 한다. 그래도 라티프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인도에서 배우가 되는 게 소원"이라는 라티프는 "인도 영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감정이 풍부한 배우로 성공해 할리우드로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네비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아미타 드바디가는 "해외에서도 인도 영화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유럽과 미국 등에서 배우의 꿈을 안고 인도로 건너오는 NRI(non-resident Indians.외국 거주 인도인)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국내 영화 시장이 커지면서 인력이 부족해진 것도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산지바니'의 출연진은 모두 남아공 출신 NRI로 구성됐다. 톱스타 살만 칸과 염문을 뿌리고 있는 미국 출신의 카트리나 카이프처럼, 이미 스타 반열에 오른 NRI도 등장했다.

인도 사람들은 영화에 '미쳐 있었다.' 지난달 19일 오후 6시 재래시장과 홍등가가 위치한 뭄바이 그랜드로드 뒤편 거리. 50m마다 하나씩 영화관이 있는 이 거리에서 한 편에 10루피(약 210원)를 내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산하던 거리는 순식간에 인파로 가득 찼다.

비슷한 시각 시내 중심가의 멀티플렉스 'CR2'도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부유층에게 인기를 끌며 급속히 퍼지고 있는 멀티플렉스의 관람료는 200루피가 넘는다. 이곳 9개 상영관 중 5개 관에서 상영하는 인도 영화들은 이미 매진돼 사람들은 다음 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뭄바이의 미디어는 여배우 실파 쉐티가 영국 TV에 출연해 모욕적인 말을 들은 사실을 일제히 톱으로 보도했다. 그 다음으로 보도한 내용은 톱스타 커플인 아비섹 바흐찬과 아이쉬와라 라이의 근황이었다. 이달 결혼하는 이들의 미주알고주알 근황은 인도 젊은이들에겐 상식이다.

인도 국립영화진흥공사(NFDC)의 공보관 우샤 네어는 "술을 마시는 것처럼 영화는 인도인의 삶의 일부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오락거리가 영화"라고 말했다. '볼리우드(Bollywood.봄베이-뭄바이의 옛 이름-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는 이런 토대 위에서 꽃을 피웠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창조한 이듬해인 1896년 6편의 단편영화가 뭄바이에 처음 상영됐고 109년 만인 2005년엔 1041편의 인도 영화가 제작됐다. 세계 최대 규모로 매년 300여 편의 영화를 만드는 할리우드의 3배가 넘는다. 매일 2000만 명의 인도인이 1만3000여 개의 영화관을 찾고 있고 2001년 통계로 600만 명의 비정규직 인력이 영화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매출은 연 35억 달러(약 3조2800억원)에 이르고 있다.

그늘도 있다. 네어는 "매년 제작되는 1000여 편 중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작품은 10% 남짓"이라고 말했다. 이 10%에 드는 작품들은 톱스타들이 출연하는 일종의 '블록버스터'들이다. 소수의 스타와 감독들은 혈연과 혼인으로 얽혀 인도 영화를 좌지우지하는 족벌을 형성하고 있다. 바흐찬의 아버지인 아미타브 바흐찬은 자타 공인의 인도 '국민배우'이고, 2월엔 미스월드 출신의 톱스타 라이를 며느리로 두게 됐다. 카푸르가(家)처럼 배우와 감독으로 4대가 볼리우드를 주름잡은 가문도 있다.

천편일률적인 '권선징악'과 '해피엔딩'도 인도 영화의 국제경쟁력을 갉아먹는 원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인도 영화의 미래는 눈여겨볼 만 하다. 90%의 영화가 적자를 내지만 영화 제작 편수는 2005년 한 해만 전년 대비 107편의 영화가 더 만들어질 정도로 역동적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인도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앞으로 5년간 평균 14%의 성장을 지속할 것이고 2015년에는 세계시장의 11%에 해당하는 20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화는 그중 20%를 점하고 있다. 인도 영화시장을 챙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뭄바이=이충형 기자<adch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