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위안부 범죄 아님을 일본 정부가 반박해 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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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일본군 종군위안부 피해자)의 바람은 그렇게 큰 게 아닙니다. 일본 정부가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역사적 책임을 지기를 원할 뿐입니다."

일본계 마이크 혼다(65.민주.캘리포니아.사진) 미국 하원의원은 지난달 31일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하원에 제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단호한 이유에 대해 "화해하려면 과거를 망각해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의안은 "일본이 종군위안부들에게 가한 집단 강간과 강제 낙태, 인권 유린은 사상 유례가 없는 잔혹한 만행"이라며 일본 정부에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 총리가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혼다 의원은 지난해 파킨슨병으로 은퇴한 같은 당 레인 에번스 전 하원의원의 뜻을 이어 결의안을 냈다. 에번스가 지난해 제출한 같은 취지의 결의안은 하원 국제관계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일본과 가까운 데니스 해스터트(공화) 당시 하원의장이 전체회의 상정을 거부하는 바람에 채택되지 못했다.

결의안은 "일본에서 1993년 종군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의 성명을 철회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일본의 몇몇 교과서는 전쟁 범죄를 축소하려 한다"고 규정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위안부의 성 노예화와 인신매매가 없었다'는 어떤 주장도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반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와 미래의 세대에 이 가공할 범죄에 관해 교육하고 국제사회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고도 했다. '일본 정부가 역사적 책임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한 에번스 결의안보다 촉구의 강도가 훨씬 세다.

일본은 하원의 결의안 채택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의 거물인 톰 폴리 전 하원의장(본지 1월 13일자 5면)을 로비스트로 고용했다. 그러나 같은 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결의안을 지지하고 있어 전체회의 통과 전망은 밝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을 내면서 펠로시에게 "멍에를 안고 살아가는 종군위안부 생존자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며 "결의안은 정의를 요구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미국이 듣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차대전 때 미 정부가 일본계 미국인들을 격리 수용함에 따라 콜로라도의 집단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3년 수용소에서 나온 그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1996~2000년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이 2차대전 때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과하고 희생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AJR 27)을 주의회에 제출, 통과시켰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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