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총재쪽으로 넘어간 「내각제 공」/노­김회담 해석에 여야 추측만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권 내부 교란작전으로 일부선 의심/총선전 거론·변신위한 복선 점치기도/“큰 변수는 안될것” 민주계선 애써 평가절하
16일 노태우­김대중 청와대 회동후 내각제 개헌문제가 여야 내부에 미묘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청와대 회동에서 두사람이 한 발언의 뉘앙스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면 개헌하겠느냐는 김총재의 질문에 『김총재가 정치권의 합의점을 만들고 국민적 합의점을 찾아보라』고 공을 김총재에게 떠넘겼는데 김총재는 회동에서 내각제 불가방침을 한마디도 않은채 당으로 돌아와서는 『노대통령이 추진의사가 있는 것 같더라』는 추측을 흘렸기 때문이다.
과연 내각제의 불씨는 살아있는 것이며,노대통령과 김총재의 진의는 무엇인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16일의 노­김 회담은 청와대와 민자당내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청와대측은 16일 노­김 회동을 계기로 오히려 내각제 개헌론이 되살아 난듯한 기미를 보이자 이같은 현상이 순전히 김대중 총재의 관심과 태도변화 때문이지 청와대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개헌 얘기는 우리에겐 모두 지난일이며 이젠 김총재가 생각이 있으면 알아서 할문제』라고 거듭 「김총재 의중」이 관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청와대측이 개헌론에 무관함을 극력 주장하는데 반해 민자당내에선 계파별로 온갖 통설과 추측이 나돌고 있다. 내각제 절대불가를 고수해온 김총재가 내각제 개헌문제를 두차례나 거듭 제기한 것은 잠재적 폭발성을 지니고 잠복해 있는 내각제탄에 불을 댕겨 여권 내부를 교란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가 하면 교란용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기대섞인 분석도 있다.
민정·공화계측은 이같은 근거로 김총재가 그동안 내각제를 거론할때 반드시 붙였던 「장기집권 음모」「6·29 선언에 대한 배반」등 나쁜 이미지의 수식어를 일체 달지않았다는 점을 들고있다.
특히 노대통령이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내각제를 원치않고 있다』고 개헌 불가입장을 명백히 했는데도 김총재가 『국민이 원한다면 개헌하겠느냐』고 되물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김총재가 대통령의 의중이 의심스러워서가 아니라 뭔가 다른의도를 갖고 던진 의미있는 물음이라고 보고있다.
다시말해 이날 회담을 계기로 김총재 스스로 내각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동시에 「국민이 원한다면」을 전제로 한 내각제 개헌논의의 새 출발점을 제공한 측면이 강하다고 민정·공화계측은 조심스럽게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개헌논의의 접근에 있어서는 노대통령과 김총재가 각각 다른시각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노대통령이 『김총재가 정치권의 합의와 국민적 합일점을 찾는다면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고 되받아친 것은 대통령 스스로 내각제에 대한 강한 미련과 집착을 갖고있더라도 개헌추진을 선도적으로 하지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는 5·28 확대당정회의에서의 내각제 개헌 포기발언으로 공은 김총재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대통령의 입장을 천명한 것이며,따라서 현재와 같은 호남대 비호남의 정국구도에서의 한계를 김총재가 인식하고 있다면 이제는 김총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때라는 기존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여권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기조하에서 여권 내부에서는 김총재가 14대총선 이전에 개헌논의를 제기할 것인지에 촉각을 곧두세우고 있다.
물론 김윤환 총장이나 김종호 총무 등은 『시기적으로나 현재의 여건으로 보아 14대총선 이후에 변화가 올 수 있지 않겠느냐』며 총선전 개헌논의 대두 가능성에 비관적 전망을 하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서는 14대총선 전에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것이 여권 일각의 조심스런 관측이다.
김총재로서는 내각제 개헌이라는 카드를 십분 활용해 그에 따른 반대급부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총선전이 최적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총선전 개헌논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어쨌든 청와대나 민정·공화계측은 이날 회담을 계기로 내각제 개헌논의가 새로운 양상을 띠고 수면아래서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청와대나 여당이 나서면 될일도 안된다』는 계산 때문에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내심 김총재측의 선회를 유도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러나 김영삼 대표의 민주계측은 『정국에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며 철저하게 평가절하 하고 있다. 김대표의 측근인 김덕룡 의원은 『김총재가 명분에서도 그렇고 실리면에서도 보장이 안되는 내각제를 받을 수 있겠느냐』며 『결국 현상유지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의미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특히 노대통령이 김총재와 유엔동행을 제의하는 등 김총재와의 관계복원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있는데 대해서 민주계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민당도 이제 공(내각제)이 노대통령으로부터 김총재의 품으로 날아들었다고 보고있다.
공을 멀리 내차버리든지 품안으로 안아들일지는 오직 김총재의 결단에 달린셈이다.
김총재는 이같은 부담을 떨쳐버리려는듯 이날 회담직후 국회로 돌아와 『저쪽(청와대)에서 내각제에 대한 별다른 움직임이나 입장변화가 없는한 더이상 노대통령에게 내각제 문제를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해 내각제 개헌은 일단락됐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정가는 물론 신민당 안팎에서는 노­김 사이에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심도깊은 물밑교감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고있다.
노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통해 김총재에게 유엔동행을 제의하는등 광역선거 참패후 코너에 몰린 김총재는 동반자로 복원시키고 야당이 가장 목말라 하는 선거자금문제 등에 합의해 주었는데 반대급부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김총재는 여전히 내각제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고 이날 회담에서도 겉으로는 양인이 내각제 개헌을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김총재의 태도변화 여부에 따라 14대총선을 전후해 개헌문제가 수면위로 급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게 신민당 내부 분위기다.
지역적 한계 때문에 차기 대권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저울질한 김총재가 14대총선 전후 내각제 개헌에 신축적 입장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특히 광역선거후 점증되고 있는 김총재의 2선후퇴론과 최근 신민당내 계보로 발족한 「정치발전연구회」등 외압이 거세질 경우 위기의식을 느낀 김총재가 갑자기 변신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 상당수 야당의원들 스스로도 내각제 수용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9월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통일정국」으로의 엄청난 정국변화가 오고 그렇게 될 경우 자연스럽게 금년말이나 내년초에 내각제를 중심으로한 개헌론이 대두될 수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때가면 정계구도 변화가 불가피하고 여야가 내각제 개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이번 노­김 회동은 양쪽에서 내각제 불가를 거듭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복해있던 김총재의 내각제선회 가능성을 오히려 표면화 시키는 작용을 해 앞으로 김총재의 행보가 관심의 초점에 놓이게 됐다.<정순균·문일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