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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증가 기뻐만 할일인가/신성순(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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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상반기를 넘기면서 올해 우리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자리를 굳히고 있다.
실제로도 주요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고 적색 혹은 황색경보가 청색신호로 바뀌고 있다.
수출이 2·4분기부터 회복세로 돌아섰고 자금난·인력난·사회간접 부담 등으로 고충을 겪고 있으면서도 산업활동은 계속 활황을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가격이 고개를 숙이는가 하면 물가도 상대적이기는 하나 진정세를 보이고 있고 장기침체에 빠져있던 증권시장도 서서히 회복의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6월18일 청와대에서 학계·산업계·언론계 인사들까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조업 경쟁력강화대책회의에서 노태우대통령이 『우리경제가 긴 터널을 벗어나는 느낌』이라는 말을 한것도 이같은 각종 지표의 호전에 근거를 둔것으로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무적인 것이 수출의 회복이라 할수 있다.
작년에 9%의 성장을 이룩하고 물가도 당초 정부약속대로 한자리수를 꿰어 맞추는데 성공했으면서도 이마의 주름을 펴지 못했던 것은 수출이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연말 올해의 경제를 전망하면서 비관론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근본이유는 수출에 대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수출이 4월에 18.8%,5월에 23.9%,그리고 6월에는 증가세가 다소 줄었다해도 15.5%의 신장률을 보였으니 비관만해왔던 우리경제에 대해 기대와 낙관을 하게된 것이 무리가 아니다.
보수적이고 신중하기로 이름난 한국은행조차 하반기 수출이 14%정도의 속도로 계속 증가,무역수지가 지난해와 올 상반기의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설것이란 밝은 전망을 내놓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처럼 기대를 모으고 있는 수출이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인지,또 늘어난다 하더라도 과연 기뻐만 할 수 있는 것인지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것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수출증가가 우리산업의 경쟁력 회복에 의해 당당하게 얻어진 전리품이라기 보다는 소련·동구권의 체제변화에 따라 일시적으로 나타난 반짝수요에 힘입은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은 그동안 우리의 주력시장이었던 미국·일본시장에 대한 우리의 수출이 계속 줄고 있는것으로 미루어 쉽게 짐작할수 있다.
88년만해도 2백14억달러에 달했던 대미수출이 90년에는 1백93억달러로 2년사이에 9.5%가 감소했고 올들어서도 5월말현재 전년동기 대비 4.2%의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시장에 대해서도 89년에 1백34억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던것이 90년에는 1백26억달러로 6.1%가 줄었고 올들어 다소 회복되고는 있으나 그 증가율은 5.6%의 미미한 것이다.
반면 소련에 대한 수출은 88년의 1억달러에서 90년에는 5억달러로,동구권에 대한 수출도 같은 1억달러에서 5억달러로 2년사이에 다섯배가 늘었고 올들어서도 5월말현재 이미 대소수출이 3억달러,동구권수출은 이보다 많은 3억5천만달러에 육박,신장률이 각각 47%와 95%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시장에 대해서도 89년 천안문사태로 한때 주춤했던 수출이 작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90년 실적이 15억5천만달러에 달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상품은 지불조건이 좋고 첨단제품·고급상품으로 경쟁해야하는 선진국시장에서는 계속 밀려나면서 소련·동구와 같은 지불조건이 나쁘고 저가상품끼리 경쟁하는 시장에서 겨우 활로를 찾고 있다는 얘기다.
그같은 시장이나마 지속적으로 우리 상품을 팔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들의 정치·경제여건으로 미루어 얼마나 수요가 늘어날지,뜻밖의 손실을 입는 일은 없을 것인지 미래가 불투명하다.
더욱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것은 그같는 저가·저품질 시장에 매달려 통계상 수출실적이 늘어나는데 만족하고 안주할 경우 우리산업이 선진수준으로 도약할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다.
수출의 증가를 기뻐만할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 우리의 수출전략은 저임을 바탕으로한 저가상품으로 저가시장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월남시장이 그랬고 중동시장이 그랬다. 선진국들이 조건이 나빠 외면하는 곳에 들어가 우리의 기반을 닦고 힘을 축적해 선진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우리의 성장과정이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저가시장진출도 잠재력의 신장을 의미했고 앞으로 한걸음이라도 나간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애써 닦아놓았던 선진국의 시장에서 밀려나 저가상품시장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전진이 아니라 후퇴다.
정부나 일부기업에서는 소련·동구권 진출을 대단한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수치다.
이제부터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선진시장에서 선진국들과 경쟁에서 이기는 쪽으로 수출전략을 바꿀것을 촉구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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