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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고 배우고 인생은 즐거워!

중앙일보

입력

"지난날을 생각해본다. 인생이 이런 거라고…."

지난 23일 오전 10시 30분 송파구 삼전동 송파노인종합복지관 내 송파장수대학. 150여 명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스크린의 가사를 보며 노래를 따라하고 있었다. 강사가 마이크를 대기라도 하면 벌떡 일어나 덩실 어깨춤을 추는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매주 화요일 이곳에 모여 노래를 배우며 노후를 즐기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모습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5세.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함께 모이면 즐겁고, 흥에 취하면 행복하다.

같은날 오전 3층 장수홀에 설치된 포켓볼대. 노인들의 포켓볼 게임 열기가 뜨거웠다. 70~80대 노인들은'포켓볼은 젊은층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있었다. 자유자재로 브리지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끌어치기와 밀어치기를 조절하는 등 수준급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팔순의 곽순례 할머니는"젊었을 때는 잘 됐는데 이제는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되네"라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올해로 구력 5년이라는 곽 할머니는"노년부 대회에 나가면 우승할 자신이 있다"며"이곳에 오면 모두 친구가 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옆 탁구대에서는 강대현(75) 할아버지가 탁구 혼합복식을 한 뒤 땀을 닦고 있었다. 강 씨는"2000년 교육공무원을 퇴직한 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별생각 없이 장수대학에 나왔지만 지금은 땀흘리고 운동하는 행복에 흠뻑 빠져있다"고 자랑했다.

이처럼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 마련된 장수대학에는 하루 500여 명의 노인들이 각종 프로그램을 배우며 인생을 즐기고 있다. 1996년 복지관이 개관하면서 노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처음 800여 명의 회원이 지금은 친구를 사귀고 무료강좌를 들을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무려 5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프로그램도 해가 갈수록 늘어나 노래교실을 비롯해 인터넷.외국어 강좌 등 현재 82개 강좌가 운영되고 있다. 매년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 한차례씩 프로그램을 바꾸거나 확대하고 있다.

컴퓨터·인터넷 강좌는 매년 확대되고 있다. "손자·손녀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수강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댄스수업은 수강신청 때면 줄을 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노인들은 이곳을 찾으면서 활력을 찾은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강말다(77) 할머니는 5년 전부터 장수대학에서 노래를 배우면서 생활의 활력을 되찾았다. 10여 년 전 관절염으로 삶의 재미까지 잃어 외출이 싫었지만 이곳에 나오면서부터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강 할머니는"마음이 젊어지니 옷 입는 것에도 더 신경이 간다"며 수줍어 웃었다. 할머니는 이날 빨간색 니트에 붉은 목도리를 하고 한껏 멋을 낸 차림이었다.

최근 신장수술을 받은 부인의 병간호를 위해 병원을 오가고 있는 송종수(85) 할아버지도 화요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송 할아버지는"노래를 따라 하고 춤 동작을 익히다 보면 병 간호의 피로가 싹 가시고 새로운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장수대학에서 만난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따로 가곡동아리 등 동아리도 만들고 있다. 이들은 장수대학 밖에서도 자주 만나고 있다. 일부 동아리 회원들은 독거노인 등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사랑을 손길도 전하고 있다.

장수대학은 해마다 활성화하고 있지만 이곳의 사회복지사들에게는 아쉬움이 있다. 정작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소외 노인들에게는 웃음을 찾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거동이 불편하거나 생활환경이 열악한 노인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내년부터는 직접 이들의 집을 찾아 배움의 기회를 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정제(63) 복지관 관장은"노년기 허탈함과 외로움으로 우울증세를 보이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장수대학에 나오면서 웃음을 되찾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사진=프리미엄 이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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