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국내 최초로 고미술학 집대성|고유섭 저-한국미술사 및 미학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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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내가 겪은 l960년대의 시대상은 4·19학생의거, 5·16 군사혁명, 한일회담반대에 따른 6·3사태 등으로 대학은 학문연주에 전념하도록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어떻게 보면 불행한 시대였다. 솔직히 말해 당시 시국의 불확실성과 학원의 분위기는 학문에 전념할 수 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대학생들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지만 필자에게는 솔직한 심경이다.
1961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에 고고인류학과가 신설되어 그 이듬해에 입학했으나 그 때만해도 고고학이 생소한 학문이었던 관계로 우리나라에서는 개설서는 물론 이론서 한권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강의 내용은 고고학·인류학·미술사 등 비교적 다양한 편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미술사 강의를 듣게 되었고 그때 소개받은 책이 고유섭의『한국미술사 및 미학논고』였다. 이 책은 고유섭이 타계하기 전까지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한 한국미술사 관련논문을 모아 통문관에서 간행한 것으로 2부로 나누어 편집되었는데 l부는 주로 한국의 고미술에 관한 제 논고를, 2부는 주로 미학에 관한 것을 수록하고 있다.

<유일한 한국인 미술사학도>
차현 고유섭 선생은 우리나라미술사학의 개척자로서 l905년인천에서 출생, 보성고등 보통학교를 거쳐 일제시대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서 미학 및 미술사를 전공하였는데 광복되기 전까지 경성제국대학 20년 역사에 미학을 전공한 한국사람으로서는 유일한 분이셨다. 이를 보더라도 우현선생은 세인의 관심이 전혀 없는 분야를 전공하여 졸업 후 28세에 개성 부립 박물관장이 되었다.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학창시절에 정진했던 학문을 실제로 활용, 많은 지역을 탐방·답사하여 1944년 타계할 때까지 우리 고대미술의 진상을 밝히고 우리 나라 고고 미술사학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많은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저서로는 『송도고적』『고별청자』『조선탑파의 연구』『조선미술문화사논총』『전별의
병』등이 있으나 모두 유작이다.
『한국미술사 및 미학논고』역시 유작으로 1963년에 출간된 것이지만 그 속에「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이라는 제하의 논문 첫머리에『미술이란 것은 미의식에서 말한다면 기술에 의하여 미의식이란 것이 형식적·양식적으로 구형화 된 작품이라 하겠고, 가치론적 입장에서 말한다면 미적 가치나 이념이 기술을 통하여 형식·양식에 객관화되어 있는 것이라 하겠나』고 미술을 심의식과 가치적인 측면에서 구분, 정의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지·정·의가 인간 심의식의 유일한 능력분별 범주요, 진·선·미가 인류문화의 유일한 가치분별 범주라면 지·정·의와 진·선·미의 관련성은 문제도 되지 않지만 미술이 인간의 심의식을 들여다보고 인간의 가치이념을 들여다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한 부분임에 틀림없다고. 다소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 알아야 고미술 이해>
또『조선의 미술, 조선미술이라 할 때 그것이 곧 조선의미의식의 표현체·구현체며, 조선의 미적 가치이념의 상징체·형상체로 이해된다. 속된 비유로 미술을 통하여 미적 심의식과 미적 가치이념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관상객이 인물의 용모형태를 통하여 주체의 성격을 들여다보고 인격의 고하를 판정함과 다름없다』고 해 미술의 이해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고미술의 연구라는 것은 결국 기술전공자가 기술적 입장에서 회고·반성하는 기술적 문제 외에 문화사적 견지에서 그 양태를 통하여 문화의식·문화 이념·문화가치를 성찰함에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즉 미술이란 것에 대하여 우리는 이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는데 특히 후자는 미술에 대하여 과거의 문화사적 파악이란 점과 오늘날과 앞날의 새로운 문화사적 전개를 위하여 무게를 갖는다』고 피력한다.
나아가 그는 조선미술의 특색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도 필경은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되는데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곧 깊고 오랜 연구의 총 결집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지 일조일석에 나올 것이 아니라고 못박는다.
그리고 그는『조선의 미술은 민예적인 것이며, 신앙과 생활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조선의 미술은 순전히 감상만을 위한 근대적 의미에서의 미술이 아니다. 그것은 미술이자 곧 종교요, 미술이자 곧 생활이다. 말하자면 상품화된 미술이 아니므로 정치한 맛, 정돈된 맛에서는 항상 부족하고 그 대신 질박한 맛과 둔후한 맛과 순진한 맛에 있어 우수하다』고 갈파하고 있다.

<조선미술문화 4기로 나눠>
그는 조선미술문화의 역사변천을 원시 고유미술문화 시대, 한문 문화섭취시대, 불교미술문화시대, 유교문화시대의 4기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는데 특히 불교가 건축·조각·회화 등 동양회화 미술에 끼친 영향의 심대함을 밝히고 있다.
이밖에 신나·고려·조선 시대의 미술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특히「조선탑파개설」에서탑파의 기원·분류·발전과정·특징 등을 상술했다. 그에 의하면 신라의 경우 목탑에서 전탑으로, 다시 석탑으로 변했으며 평면형식은 정방형을 기본형식으로 육각형·팔각형 등 아 홉가지 형식으로 구분했다. 그는 또 미학의 정의, 미학의 사적개관, 미의 시대성과 시대예술가의 임무, 형태미의 구성, 현대미의 특색 등 다양한 기초지식을 전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미술은 민족문화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으로 문화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빠른 길이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로 평가한다. 차현은 일제치하에서도 민족문화의 소생을 예견하고, 민족문화의 기초적 해명을 통해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후대에 전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나라 미술사의 완성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이『한국미술사 및 미학논고』는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우리 나라 미술사 및 미학연구의 방법론은 물론 문화재의 기록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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