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 최한기 탄생 200년 기념 학술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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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이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육당 최남선(1890~1957)은 저서 '조선상식문답'을 통해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1803~1877) 선생이 제일이라 했다. 천문.지리.농학.의학.수학 등 학문 전반에 박식해 1천여권을 저술했으나 현재는 15종 80여권만 전한다.

다산 정약용 이후 최대의 학문적 거인으로까지 평가받는 혜강이지만 그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다리를 놓은 인물로도 평가받는 혜강의 탄생 2백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학문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오는 21일 오전 10시부터 '성균관대 6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다.

최한기 기념 학술대회의 주제는 '혜강 기학(氣學)의 사상 : 동서의 학적 만남을 통한 신경지'다. 1971년 혜강의 흩어진 저작들을 처음으로 수집해 '명남루총서(明南樓叢書)'를 펴낸 바 있는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원장 임형택)이 주최한다.

혜강의 사상은 그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기학'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가 말하는 '기(氣)'는 전통 철학의 범위를 크게 넘어선다. 자연 과학 등 서양 문물도 모두 그의 '기학'개념 속에 포괄된다.

혜강은 서양의 자연과학과 기술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서양 철학의 회통이라는 말이야 쉽게 할 수 있지만 이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일은 요즘에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서양이 몰려오기 시작하던 19세기 중엽에 동서를 융합하는 철학 체계를 독창적으로 확립해 냈다는 것이 혜강의 놀라운 점이다.

임형택 교수는 "혜강은 동양의 장점과 서양의 장점이 만나 하나로 화합하는 세계를 이성의 발전으로 보았다"면서 "세계화가 오히려 지역간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는 오늘날 진정한 세계화의 방향을 혜강의 사상에서 시사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교수는 또 "개화기 서양 문명에 대한 동양의 대응을 묘사하는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말이 혜강에겐 적용이 안된다"면서 "동양의 정신적 가치를 지키면서 서양의 기술 문명을 배우자는 '동도서기'론의 현실적 한계를 혜강은 그런 말이 쓰이기 전에 이미 꿰뚫어 본 측면이 있다"고도 했다. 과학 기술을 배우면 서양의 철학과 종교 등 정신적 요소도 배우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임교수는 이날 '정약용의 경학과 최한기의 기학-동서의 학적 만남의 두 길'이란 기조발표를 할 예정이다.

도올 김용옥 중앙대 석좌교수가 오랜만에 국내 학술대회의 발제자로 나서 눈길을 끈다. 혜강과 관련해 '독기학설(讀氣學說)'이란 책을 펴낸 바 있는 김교수는 '독인정설(讀人政說)'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심산 김창숙 전 성균관대 총장의 자료 조사를 위해 성균관대를 찾았던 김교수에게 학술대회 관계자가 발제를 권유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권오영(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최한기 기학의 사상사적 의미와 위상'을, 박희병(서울대) 교수가 '최한기의 동서취사론(東西取捨論)'을 발표한다.

김철앙(金哲央.일본 오사카 경제법과대).팡완리(龐萬里.중국 항공항천대).장융탕(張永堂.대만 칭화대).가와하라 히데야(川原秀哉.일본 도쿄대) 교수 등은 혜강이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조명한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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