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래서 문화 선진국…암스테르담 '유리 음악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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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도심의 고색창연한 건물 내에 투명 유리와 철로 사방 벽과 천장을 꾸민 이색 콘서트홀이 들어섰다. 올해 준공 1백주년을 맞는 옛 증권 거래소 건물인 보이어 반 베르라그(Beurs van Berlage.이하 BvB)내의 '옥수수 홀'이다.

원래 자리에 있던 옥수수 경매장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지만 '유리 음악당'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1990년 2백30석 규모로 개관, 네덜란드 필하모닉 단원으로 구성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습실 겸 무대로 사용 중이다. 자본주의의 요람에서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건축가 헨릭 베르라그(1856~1934)가 설계한 BvB는 암스테르담시 소유의 증권.곡물 거래소 건물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3분 거리에 있다. 1912년 공간이 비좁아 증권 거래소가 다른 건물로 이전한 후에도 옥수수.화물.보험 상품을 사고 팔았고 농산물 선물(先物)거래는 음악당이 개관한 후인 98년까지도 BvB내의 나머지 공간에서 계속됐다.

암스테르담 시가 BvB 건물의 절반을 음악홀로 개조한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마땅한 연습 공간이 없어 떠돌이 신세였던 네덜란드 필하모닉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단원 1백30명 규모의 이 교향악단은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오케스트라. 85년 암스테르담 필하모닉과 우트레흐트 심포니, 네덜란드 체임버를 합병해 탄생했다. 네덜란드의 음악사절로 전세계를 누비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의 주무대인 콘서트헤보에서 매년 55회 공연을 한다.

하지만 1888년에 지어진 콘서트헤보는 연습실이 비좁아 상주단체인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가 쓰기에도 부족하다. 네덜란드필이 네덜란드 국립오페라의 반주를 맡을 때는 암스텔 강변에 있는 음악극장에서 연습하지만 자체 정기연주회를 위한 연습 공간이 없어 애를 먹기 일쑤였다. 네덜란드필이 연습실을 찾던 중 눈길이 멈춘 곳이 바로 BvB였다. '유리 음악당'개관 3년전인 87년 증권거래소.시립은행이 들어서 있던 곳이 5백34석짜리 '야쿠르트 홀'로 개조돼 네덜란드필의 연습실 겸 무대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교향악단 사무국도 BvB 안에 입주해 있다.

'야쿠르트홀'과'유리 음악당' 옆에는 1백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미니 소극장 '아세이 홀'도 있어 규모는 작지만 쓰임새는 다양한 아트센터 기능을 충분히 해낸다. 유리 음악당과 아세이홀에는 이동식 의자를 사용해 언제든 리셉션이나 만찬회장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BvB에서 가장 넓은 메인 홀은 구리와 커피.목화 거래가 이뤄지던 곳. 대형 파티나 정치행사.전시회 등 각종 이벤트가 열린다. 지하의 귀중품 보관소는 2001년 공예품과 건축 디자인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메인홀 입구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월 쉼)까지 개방되는 BvB 카페가 예스러운 실내 분위기로 방문객을 맞는다. BvB는 60년 해체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기초공사가 부실해 벽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 하지만 7백13개의 콘크리트 파일로 기초를 보강해 20세기 초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BvB의 고객 담당 매니저 요헨 마닝거(32)는 "BvB는 문화재급 건물을 잘 보존하면서도 도심의 입지조건을 잘 살려 시민과 함께 살아 숨쉬는 문화센터로 만들려는 암스테르담시 당국의 의지가 반영된 곳"이라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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