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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失業 해법, 기업환경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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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선생 입장이 요즘처럼 곤혹스러운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선생으로선 가르치는 것이 첫째 일이지만, 졸업한 학생들이 일자리를 어떻게 찾아가는가 또한 매우 중요한 관심사다. 학생들이 취직이 잘 돼야 선생 또한 마음이 편할 텐데, 최근 상황은 너무 우울하다.

나만의 걱정이 아닌 것 같다. 정부 통계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의 청년 실업률(15~29세)은 7.3%로 전체 실업률 3.3%에 비해 두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청년 실업자 수는 32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구직 단념자 등을 포함한 실제 실업상태에 있는 젊은이들은 50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내년 봄 대학 졸업자들이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청년 실업률은 더욱 높아질 게 뻔하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실업자 통계에 잡히는 젊은이들이 숱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성장률을 높여도 그전 같은 고용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성장이 신통찮은 터에 있던 일자리마저 외국으로 뭉텅뭉텅 빠져나간다. 세상이 불안하고 골치아픈 일들이 많으니까 기업들은 투자를 미루거나 아예 공장을 해외로 옮기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핵심산업들마저 중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고 있는 실정이다. 무역연구소에 의하면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나가 만들어낸 일자리가 무려 1백만개에 이른다고 한다. 두 나라 사이의 임금격차를 감안해도 약 1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중국으로 옮겨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러한 일자리 유출과 함께 기업의 채용관행도 경력직을 선호하고 있어 청년들의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국내의 일자리 창출은 줄어들고 있지만 대학 졸업자들은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s)'를 원하고 있다. 주로 공기업이나 금융기관.대기업.외국계기업 등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자리들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30대그룹과 공기업, 금융기관 취업자 수는 1997년 1백57만명에서 2002년 1백25만명으로 32만명이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공공부문이나 금융기관은 구조조정의 여파가 가시지 않고 대기업이나 외국기업들은 국내보다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어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 전망이다.

기대와 희망을 안고 사회에 진출해야 할 젊은이들이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마당에 어찌 건강한 사회, 건강한 경제를 기대할 수 있겠나.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실업 해소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여야 한다. 정부와 기업.대학 등 모든 경제주체가 다 합심해 나서야 한다. 정부의 장단기 실업대책도 필요하지만 젊은 인재의 수요와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과 대학들도 산학협력을 통해 청년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 최근 채용관행이 공개채용에서 수시채용으로, 신입직원보다는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에 다양한 근로경험 프로그램을 통해 근로탐색과 경력형성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인턴제도 강화도 탈출구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대학이 비용을 부담하고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장기 인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대학과 산업현장을 연결하는 OJT교육 등을 체계화해서 기업의 인력수요에 눈높이를 맞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역시 궁극적으론 정부가 얼마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사실 정부가 막대한 실업예산을 투입해 만들 수 있는 일자리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저렴한 청년 실업대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정부 정책들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어 안타깝다. 기업환경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박희종 명지대 금융지식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