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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일본경제] 뼈깎기 10년…'기술패권' 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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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본 경제가 다시 뛰고 있다.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잃어버린 10여년'동안 절치부심하던 일본 경제…. 그러나 수십년간 축적해 온 노하우에다 90년대 이후 철두철미하게 이뤄낸 '슬림화'가 결합돼 '잃어버린 10여년'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선택과 집중'의 결실이다. 마이너스를 헤매던 경제성장률도 최근 7분기 연속 플러스로 돌아섰다. 발상과 시스템을 모두 확 바꿔버린 일본 경제의 생생한 현장을 3회에 걸쳐 살펴봤다.

캐논.소니.올림푸스 등 일본의 카메라 및 프린터 업체 27개사로 구성된 '일본사진기공업협회(CIPA)'. 이 단체가 최근 의미심장한 발표를 했다. "내년부터 디지털 카메라와 프린터 등 주변기기에 적용되는 표준을 단일화해 생산키로 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소니의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것을 캐논의 프린터로도 현상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전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예상 규모는 5천2백만대. 현재 95%를 일본 업체들이 장악한 상태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만족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서로의 기준을 고집하지 않고 경쟁사끼리 손을 잡아 시장을 키워내 이른바 '재팬 스탠더드'를 조기에 '글로벌 스탠더드'로 굳혀나가겠다는 것이다. '제1차 IT붐'에서는 미국과 한국 등에 밀렸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제2차 IT붐'에서는 경쟁사니 뭐니 따지지 않고 일본 회사 전체가 힘을 모아 이끌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절실히 배어 있다.

도쿄 시모마루코(下丸子)의 '캐논 타운'에서 만난 캐논의 오시야마 다카시(押山隆) 디지털 카메라 사업부장은 "이는 혁명에 가까운 일"이라며 "일본이 기고만장하던 80년대에는 상상도 못하던 발상"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도쿄에서 비행기로 1시간30분 거리의 에히메(愛媛)현 오에(大江)지구. 3백60만평의 매립지에 빽빽하게 들어선 공장 곳곳마다 요즘 잔업으로 정신이 없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낮 12시50분 매립지 중앙에 위치한 오에 지구는 오가는 차량들로 활기가 넘친다. 오후 1시 시작하는 오후 작업에 1분이라도 늦을까봐 종업원들은 총총걸음으로 공장으로 달려간다.

이 곳에 자리잡은 스미토모(住友)화학(사진)의 후지모토 히로유키(藤本裕之) 제조과장은 "액정 TV나 휴대전화 패널에 들어가는 액정화면(LCD) 소재에 대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며 "한국.중국에 추가 생산라인이 완공되는 내년까지 힘들지만 참는 수밖에 없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LCD 소재는 현재 일본이 '두세 걸음'앞선 기술로 세계 시장을 거의 1백% 장악하고 나선 부문.

하지만 '세계시장 넘버 2'인 스미토모화학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염료(染料)와 펄프 등을 만들던 곳이었다. 90년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기 위해 돌파구를 찾다가 '고부가가치쪽으로 사업구조를 확 바꾸자'는 결론을 내리고 방향을 틀었다. 2001년 '정보전자화학'부문을 만들어 2년 동안 8백50억엔의 자금을 집중 투자했다. 그리고 4%에 불과하던 LCD 소재의 매출 비중을 30%까지 끌어 올렸다. 대신 수익성이 떨어지는 섬유.펄프.가전원료 분야는 버리거나 축소하는 등 철저히 슬림화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스미토모화학은 LCD 소재인 컬러필터와 편광(偏光)필름을 전세계 모든 액정회사에 납품하는 굴지의 '정보전자화학회사'로 탈바꿈했다.

스미토모화학의 나카모토 마사미(中本雅美)전무는 "미국이 90년대에 일본을 역전하면서 기세를 올렸지만 이후 일본은 이를 꽉 물고 산업구조 전환을 이뤄냈다"며 "'뉴 테크놀로지'로 일본이 조만간, 그리고 오랫동안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세계를 리드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도쿄.에히메.후쿠이=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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