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나타니엘 호손작『주홍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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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주홍글씨』를 읽고서 죄의 고뇌와 영혼의 구원에 대해 엄숙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구 세계의 부패와 비리와 압제에서 해방되어 종교와 양심의 자유가 있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은 오늘의 미국동북부 뉴잉글랜드 지방에 정착지를 건설한다. 그러나 소신이 강할수록 다른 신념이나 생활태도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 이 청교도사회는 모든 쾌락을 죄악시하고 신정에다를 바 없는 종교적 계율에 의해 다스려지는 사회가 되었다.
『주홍글씨』의 서두는『새로운 정착지를 개척한 사람들은, 그들이 원래 구상한 것이 어떠한 미덕과 행복의 유토피아이었건 간에, 항상 맨 먼저 실질적으로 그들의 처녀지의 일부를 묘지와 감옥을 만드는데 할당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로 열린다.
이렇게 죄와 죽음은 어떤 이상사회에서도 배제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이 소설은 곧바로 그렇게 처녀지를 할당해서 세운 신세계의 한 감옥에서 잘생긴 얼굴에 기품 있는 헤스터 프린이라는 여인이 가슴에 진홍과 금실로 현란하게 수놓아진「A」자를 달고 갓난아기를 안고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보다 먼저 신대륙으로 건너온 후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를 낳아서 간부(간부·Adulteress)를 의미하는 그 글자를 일생 가슴에 달고 다니게 된 젊은 유부녀가 한낮 동안 형벌대 위에 세워지는 장면이다. 그 청교도사회의 여인네들은 이 여인이 받는 형벌이 너무 가볍다며 사형을 시켜야 마땅하다느니 하고 불평을 하지만 작가는 그녀의 기품 있는 미모와 어린아이를 안은 모습이 성모마리아를 연상시킨다는 것을 암시한다.
헤스터가 죄인으로서 만천하의 타매를 받도록 세워져 있는 형벌대 위의 발코니에 그 주의지사와 원로목사, 그리고 그녀의 교구를 담당한 젊은 목사아더 딤즈데일이 나와서 그녀에게 참회를 명하며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밝히라고 촉구한다.
원로목사의 설득이 소용이 없자 젊은 목사가 등장하는데, 젊은 나이에도 고매한 인격과 수양으로 온 천하의 존경을 받는 이 목사는 헤스터에게 그릇된 동정심에서 죄인을 감추어주지 말라고, 죄인도 사실은 죄를 고백하고 떳떳이 벌을 받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일 것이므로 그가 누구인지를 공개하여 그에게 죄에 위선까지 더하지 않도록 하라고 깊고 부드럽고 떨리는 음성으로 그녀를 설득한다.
사실상 헤스터의 죄의 상대이고 죄의 소산인 어린아이의 아버지인 이 젊은 목사의 권유 내지 호소는 호손의 인간심리의 여러 겹 모순을 꿰뚫는 작가적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압권이다.
헤스터가 이 젊은 목사의 바윗덩이라도 녹아 내리게 할만한 설득에도 끝내 아이의 아버지를 밝히기를 거부할 때 대중은 분노하나 목사의 반응은 안도와 여성의 놀라운 의지력과 관용에 대한 경탄이다.
헤스터 프린은 한번「타락한」여인은 영원히 국외자로서 철저히 소외를 시키는 17세기미국의 엄격한 청교도 사회에서 묵묵히 자신의 죄 값을 치른다. 어떠한 모욕에도 항의하지 않고 부자에게나 빈자에게나 골고루 바느질 솜씨를 제공해 주고 병들고 상심한 사람들을 보살펴 주어 그녀의 가슴에 달린「A」자가 Adulteress가 아닌Able의 의미로 인식되기까지에 이른다.
그녀의 죄의 파트너였던 젊은 목사는 그녀의 의연하고 고결하기까지 한 모습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게 몰락해 간다. 원래 고결한 인품에 높은 학식을 갖춘 성자로 그 지역 모든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인 자신의 허상과 죄에 위선까지 더하고 있는 자신의 실상 사이의 괴리감에서 오는 고통은 그의 피를 말리고 뼈를 갉아내는 무서운 것이다.
한편 뒤늦게 아내를 찾아 온헤스터의 남편 로저 칠링워스는 이 목사의 고뇌의 원인을 간파하고서 은밀하고 철저한 복수를 하기 위해 그의 의사로서 그와 동거하는데 성공한다. 로저 칠링워스는 몽마와 같이 목사의 옆에 붙어살면서 끊임없이 그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그의 처절한 자학의 몸부림을 엿보며 악마의 미소를 띄운다.
자신을 채찍질하고 벌주다못해 밤중에 자기 방을 뛰쳐나간 목사는 혼자 형벌대위에 올라섰다가 지사의 임종을 돌보고 돌아오는 헤스터와 어느덧 일곱 살의 당돌한 소녀로 자란 퍼얼을 보고 형벌대 위에 같이 오르게 하여 밤중에 세 사람의 죄인은 형벌대 위에 나란히 선다. 퍼열은 목사에게『내일 낮에도 엄마와 나와 여기에 서겠어요?』하고 묻지만 목사는『다음날, 최후의 심판의 날에 같이 서겠다』고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목사가 감추어진 죄 때문에, 그리고 그에게 흡혈귀처럼 붙어 그의 생명을 파괴하는 자기의 전 남편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 이른 것을 깨달은 헤스터는 그를 구하기 위해 숲 속에서 그를 만나 탈주를 제의한다. 이미 몸과 마음이 너무나도 쇠약해진 목사는 이 꿋꿋한 여인의 인도에 자신을 내맡긴다. 감옥에서 나온 이후 자신의 여성 성을 완전히 매장하고 사는 듯이 보였던 헤스터는 가슴의 주홍글씨를 떼어 던져 버리고 캡을 벗어 풍성한 검은머리가 쏟아져 내리게 하여 그녀가 아직도 사망하는 이 나약한 남성 앞에서 여성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들은 며칠 후 구 세계로 떠나는 배를 타고 새로운 삶을 맞을 희망에 새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죄의 씨앗인 퍼얼은 남의 눈을 피한 숲 속에서의 목사의 키스를 거부하고, 어머니에게 죄의 묘지인 주홍글씨를 다시 달도록 명령한다. 이제 죄의 짐을 곧 벗고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목사는 새 육체를 얻은 듯 활기찬 걸음을 걷게 되지만,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불경스럽고 외설스러운 말을 지껄이고싶은 충동에 몸을 떤다. 그가 비록 무수한 참회의 고행을 했지만, 은밀한 고행으로는 결코 죄를 씻을 수 없고 죄스러운 충동에서 해방될 수 없음을 극적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다.
탈출을 하기로 한 전날, 지사취임 예배에서 청중을 온통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영감에 찬 설교를 마친 젊은 목사는 교회에서 걸어나와서 형벌 대 앞에 멈춰 서서 헤스터와 퍼얼에게 손을 내밀어 자기와 함께 형벌 대에 같이 몰라서 줄 것을 요청한다.
비로소 퍼얼은 그에게 온전한 애정의 표시를 하고 헤스터는 쓰러져 가는 그의 육체를 부축해서 형벌대 위에 오른다. 목사는 만천하에 자신이 죄인임을 공표 하면서 그의 사제복의 단추를 뜯어 맨 가슴을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낸다. 후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살 위에 주홍의 「A」자가 파여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그 어두운 숙명의분위기로 독자를 압도하는 이 소설은 전편을 통해 그 긴박감을 늦추지 않는 작품이다. 호손은 인간 영혼의 은밀하고 깊은 고뇌를, 그리고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긴밀한 교감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호슨 자신이 헤스터와 딤즈데일 목사의「죄」에 대해서 청교도적인 견해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딤즈데일 목사를 통해서 죄를 숨기고 성스럽고 순결한 인간으로 행세한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심성을 왜곡되게 하는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처절한 자책과 고행도 영혼을 정화하기에 충분치 않고,『나는 여러분보다 더 중죄인입니다』라는 막연한 고백은 그의 정열의 과오에 위선과 자기기만의 죄를 더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결국 온 천하에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자신과 동료인간에 대한 거짓을 끝낸다는 말이 된다.
한편, 간음을 해서 사생아를 낳았으면서도 마침내는 그 죄의 표식인「A」우가「천사(Angel)」의 의미로 인식되게까지 된 장엄한 여인 헤스터를 통해서 호손은 인간이 인간을 정죄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그리고 헤스터의 남편 칠링워스는 호손의 눈에 인간의 단 하나의 용서할 수 없는 죄-냉혈적으로 인간 영혼의 신성성을 침해한 죄-를 저지른 죄인이다. 증오와 복수심은 그 대상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그 주체를 더욱 더 처참하게 악마로 타락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세 인물들이 엮어내는『인간의 나약성과 슬픔』의 이야기는 호손의 강렬한 상상력에 의해서 너무나 생생한 꿈처럼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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