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열린우리당 흔들려…용서하고 도와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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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평화의 바다'를 얘기해 타박을 많이 받았는데 즉흥적으로 나온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외교 채널로 공식 제기하기에 적절치 않아 정상끼리 만난 자리에서 제의해 본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에는 동해고 일본에는 일본해인데 조금씩 양보해 '평화의 바다' '화해의 바다'라고 하면 뜻이 있는 국민은 좋아할 것"이라며 "한 가지라도 공평하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큰 논란을 낳았다.

'4년 연임제' 개헌 제안과 관련해 노 대통령은 "개헌 기회를 한 번 더 연장하기 위해 임기를 단축하는 방안을 고려해 본 것은 사실이지만 적절치 않아 접었다"며 "임기 단축은 절대로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다음 개헌할 분들이 자기 임기 단축을 공약하고 개헌해야 할 것"이라며 "개헌을 안 하겠다고 하든지, 개헌이 필요하다면 임기 단축을 약속하고 구체적인 일정을 내놓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고 있고 지금과 같은 환경에선 이뤄지기 어렵다"고 밝혔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선 "지금처럼 강력한 부동산 정책이 채택된 적이 있느냐"며 "현 정책은 국민이 만든 것이므로 참여정부가 끝나도 뒤집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시간20분 동안 진행된 이날 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각종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세히 밝혔다. 23일 지상파 TV로 생중계된 신년 특별연설에서 과도한 분량의 원고를 준비했다가 "말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며 당황해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정치부문 요지

지지 높다고 모든 권력 가진 게 아니다
97년 대선 때도 1위 후보 떨어졌다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나.

"이 시기엔 이뤄지기 어렵다. 6자회담과 정상회담은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북핵 문제가 가닥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회담은 북쪽에는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남쪽은 얻을 게 없다."

-야당에선 대선 전 정상회담 개최에 반대하는데.

"야당에서 '하지 말라'는데 있지도 않은 것을 갖고 마치 제가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우리 집에 들어오지 마라'고 한다. 공연한 정치공세다. 헌법에 1년 전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법이 어디 있나. 야당이 그것을 할 수 있나. 지지가 높은 정당은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거다. 지지만 갖고 모든 권력을 쥐었다고 하는 게 아니다. 있지도 않은 정상회담 얘기는 안 꺼내줬으면 좋겠다."

-열린우리당에서 탈당이 이어지고 있는데.

"의원들에게 호소한다.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당을 만들려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함께 노력해 보자. 탈당해 무소속이 되면 힘이 없다. 당을 여러 개 만들면 국민도 어지럽고 그 당도 성공하지 못한다. 정책이 좀 다르더라도 깨지 말고 크게 뭉쳐서 가자."

-당 상황과 관련해 대통령의 거취를 분명히 해 달라.

"당적을 정리하려 했는데 당내 일부에선 대통령이 당에 있어야 된다고 하고 어떤 분들은 대통령 때문에 우리당이 망한다고 한다. 신당 하겠다는 분들과 협상하겠다. 대통령의 당적 정리가 조건이라면 제가 당을 나가는 게 당을 위해 좋은 일이다. (의원들이) 이렇든 저렇든 (당을) 나가겠다고 하는데 제가 탈당할 필요는 없고, 저 때문에 그렇다면 당적을 정리하겠다. 본래 제 목표는 대통령이 아니고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 통합이었다. 지지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제가 잘못해 밉더라도 열린우리당 같은 당 하나는 키워야 한다. 정당 하나만 갖고는 민주주의가 되지 않는다. 당이 흔들리는데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저와 열린우리당을 결부하지 말고 도와 달라."

-개헌을 위해 탈당 후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할 의향은.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 중립내각을 저 혼자 왜 하나. 거국내각이 대연정과 뭐가 다르나. 대연정 거부했으면 그만이지 거국내각 얘기가 왜 나오나."

-개헌안 부결 시 반대한 정치인들의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했는데.

"비판한다는 것이다. 대선 과정의 영향이 있고 없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하고자 하는 모든 정책을 정리해 내놓을 텐데 다 대선과 관련이 있다고 덮어씌울 수 있다. 그런다고 2년씩 준비해온 정책을 덮으란 말이냐. 그래서 대선과 관계없이 할 일을 하겠다. 중요한 의제는 대선 때 내놓아 어느 후보가 가져가면 된다. 대선 때든 아니든 저를 공격하는 모든 사람에게 응답할 것이다. 잘못한 것은 사과할 것이고 잘못이 없는데 그러면 해명할 것이고 악의적으로 공격하면 대응할 것이다. 내일이 선거날이라도 부당하게 공격당하면 반드시 해명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선 여야 후보가 아니라 야당 후보끼리 대결하는 듯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데 원인이 뭐라고 보나.

"1997년 대선 때도 1위 후보가 떨어졌다. 심각한 권력누수가 있었다고 얘기할 만큼 대세가 기울었지만 결국 정권교체가 되더라. 2002년 대선도 이맘때 지지율 5% 아래에 있던 제가 후보가 됐다. 저는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왔는데 이젠 막판에 바로 올라와도 되지 않겠나. 제가 회복된 게 10월 말인데 우리 당의 국회의원들이 바깥 후보와 내통하는 현장이 국민에게 포착되면서 다시 살아났다. 지금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너무 낮다고 포기하고 다 떠나지 말라. 선거구도는 바뀔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의 시대정신은 무엇일 것 같나.

"다음 시대정신에 대해 경제라고 하는데 경제 정책은 차별화가 불가능하다. 노무현이 경제를 모른다는데 어떤 대(大)학자와도 10시간 토론할 수 있다. 실물경제 좀 안다고 경제 잘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 사회의 민주주의와 공정한 사회 질서, 인권 등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선 확실한 차별성이 있게 돼 있다. 그걸로 전선이 이뤄지는 게 도리다."

-청와대 비서진 교체 용의는.

"교체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고 생각해 본 일도 없다."

-퇴임 뒤 고향 생활에 대한 계획이 있나. 정치는 계속할 건가.

"시민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범적이고 적극적인 시민이 되겠다. 그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정리=김성탁 기자<sunty@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정책부문 요지

목숨 걸고 부동산 투기해도 재미 못 볼 것
다음에 개헌하자는 분들 임기 단축 공약해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다는 근거가 뭔가.

"부동산 버블이 서서히 꺼질 순 있지만 갑자기 꺼지는 경착륙은 없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부동산 투기를 해도 별 재미를 못 볼 것이다. 집값이 더 올라가면 강력한 정책을 준비해 내놓겠다.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복잡한 것 꺼내지 말고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를 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

-서민들은 언제 집을 사야 하나. 대출 규제 등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실수요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

"서민들은 무리하지 말고 형편대로 알맞게 집을 사야 한다. 무리하게 빚내 사지는 말라. 많이 오르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에서 깨질 정책도 없고 다음 국회에서 뒤집을 정책도 없다. 실수요자가 손해 본다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이미 집을 산 사람은 이자가 올라 손해를 보는지 모르지만 그걸 실수요라고 말할 수 있느냐. 다음에 사야 되는데 왜 앞질러 사가지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옆집에서도 사고 친구도 사고 누구는 얼마 올랐다 하니 급해서 샀는데 앞으론 그렇게 하지 말라. 대출과 관련해 새로 집을 사는 사람들은 들어오지 말고 이미 융자받아 살아가는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선 연구를 해 보겠다. 하지만 획기적으로 틀을 바꾸진 않을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건 유출 파문에 대한 입장은.

"문건 유출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이다.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정부 측의 유출은 앞으로 없어지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국회에서 빠져버리는 것은 공무원 실수인지 국회 잘못인지 모르지만 양쪽 다 아니겠나. 그건 스스로 자제해줘야 한다."

-양보를 통한 FTA 협상 타결에 무게를 두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협상을 재고할 생각인가.

"최선을 다해 타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손해 보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정부는 농민단체 편도 아니고 기업의 편이 될 수도 없다. 그러니 정부를 신뢰해 달라. 사장을 임명했으면 투자는 사장의 결정에 맡겨 놓고 3년 뒤 평가해 나쁘면 바꾸는 것이다. 일일이 주주들이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고 '너 틀렸지. 자료 보자' 이러면 기업 할 수 있겠나.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전략에 대해선 주장하지 않는 것이 사회를 위해 이익이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우려하고 있나.

"대통령의 판단을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외교.안보를 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게 해외 언론이다. 미국이나 일본 언론은 북한에 대해 나쁜 인상을 심어도 별로 나쁠 게 없지만 한국은 위기감이 고조되면 경제가 흔들린다. 한국 언론들은 북한과 관련해 근거 없이 보도하는 외국 언론과는 차별 있게 해주면 좋겠다."

-북한에 대해 일본인 납치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는 아베 정권과 온도 차를 보이는데.

"저와 한국 국민 모두가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 틀에서 납치 문제가 최우선 과제가 되는 것은 6자회담 당사국 모두가 바라지 않을 것이다."

-한.일 간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 어려운 과제가 있지만 적절한 시기에 방일하겠다고 했는데.

"이런저런 조건을 걸어 방일 시기를 조절할 생각은 없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계속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제가 면담도 거절했지만 지금 아베 총리는 신사에 가지 않았고 그런 걸 조건으로 얘기하는 것은 외교상 적절치 않다. 그렇지만 일본 지도자들과 여론도 그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역사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데 왜 일본만 특별하게 대우를 받으려 하나. 과거의 문제를 묵살하려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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