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왜 말이 많은가/최철주 경제부장(데스크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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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왜 건물들이 모두 종이상자 처럼 구겨지며 무너졌는가. 누가 시멘트를 빼먹었으며 누가 불량 벽돌을 쓰도록 했는가.
지난 88년 소련 아르메니아공화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주요 지역에 있는 3층 이상의 건물들이 죄다 붕괴됐다. 사망자는 2만5천여명. 이 참사의 직접 원인은 강진(진도 6.9)에 있었지만 그러나 피해자가 엄청나게 불어난 근본원인이 바로 부실공사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당정치국원들에 매서운 비판이 쏟아졌다.
아파트나 공장·학교 등의 상당수는 브레즈네프서기장 시대의 철저한 계획경제하에서 건설되었다. 당고위층과 중간관리자들이 공사에 쓰일 시멘트를 가로챘으며 모자라는 양은 모래로 채워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로 건자재의 품질을 면밀히 측정해온 서방조사단은 벽돌이 조악·저질품이었다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약 아르메니아와 같은 강도의 지진이 동경에서 일어났더라면 그저 경미한 피해정도에 그쳤으리라는 보고서도 있었다.
1년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지진(진도 7.1)은 소 아르메니아의 경우보다 훨씬 정도가 심했으나 사망자는 7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일부는 고속도로상에 있는 2층 교량의 이음새가 폭삭 주저앉으면서 목숨을 잃었다.
소련은 건물의 안전성보다 「인민을 위한」목표달성에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두었다. 미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은 건물을 지을때 구조역학 기술자의 확인을 거치도록 의무화해왔으며 사고직전까지만 해도 날림공사를 한 집등 8천여동의 건물을 철거했다. 체제가 다른 양국의 건축·주택정책을 비교해 볼때 어느 쪽이 주민을 위한 것이냐 하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우리나라의 신도시 건설계획은 국민에 의해 선택된 정부가 집없는 사람에게 주택을 공급해야겠다는 일념에서 추진해온 거대한 사업이다.
그러나 소련처럼 관리들이 건자재를 빼먹는 일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미국처럼 철저한 자재 및 건축에 관한 검사·감리가 시행되지도 않았다.
어째서 여론은 신도시문제로 그렇게 떠들썩해야 하는가 하고 정부는 묻는다. 일부 부실 레미콘공사가 그리도 심각한 문제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우리가 떠들어야할 이유가 몇가지 있다.
6공들어 신도시계획이 서둘러 만들어졌고 그래서 인력이다,자재다 하는 부분을 미처 헤아리지 못해 그 부작용이 여타 경제에까지 파급되고 있음을 새삼 지적한다는 것은 매우 고리타분한 일이다.
건설현장 밑바닥의 일들이 꼬이고 꼬여서 부실공사의 폭이 확대될 갖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당과 정부가 이를 그냥 묵살해온 「대범한 자세」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이것이 여론이 요란할 수밖에 없는 첫번째 이유다. 정치적 공약사업에 대해서만은 어떤 이유로든 무비판·무수정의 입장이 고수되어야 했던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6공에서마저 그래야 한다면 그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고위 관리들은 이미 금년초에 신도시계획의 무리한 추진이 초래할 문제점을 도마위에 올려놓았으나 곧 논의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돼버렸다.
거시경제를 들여다 보는 실무관료들도 계획강행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공식석상에서는 실어증을 나타냈다. 건설업체들조차 부실공사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들의 건의는 해당 장관에게도,그리고 그 윗선에도 전달되지 않았다.
정부가 사전에 대응책을 세운 정책협의 루트가 특정사안에 대해서는 이처럼 봉쇄되고 있다.
현대전에서 일선 지휘관의 전황보고는 작전의 성패를 좌우한다. 금년초 걸프전에서 후세인 대통령은 공격목표 수정에 관한 지역사령관의 건의를 여러차례 묵살했다. 그는 바그다드에서 정치적 전략에 의한 일방적 지시만을 하달했는데 결국 지휘체계가 무너지는 쓴맛을 보았다.
조직의 경직성은 수도 파이프의 동파현상을 가져온다.
두번째는 주요정책을 다루는 전문가집단의 퇴장이다. 사회가 다양하고 복잡할수록 요소요소에 전문가들의 포진이 필요하나 우리의 관료제도는 그들의 자생적 발전을 거부하고 때로는 「과감히」제거한다. 건설부등 몇몇 부처의 전문관료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리를 떴으며 이른바 유능한 관료들은 끝없는 음해에 시달리고 있다. 어려운 일들을 해결할 사람들이 부족하다. 「만물박사」관료들의 돌격형정책은 너무 위험하다.
「머리는 나쁘면서 지나치게 부지런한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민간경영인들은 그들 임원들에 충고해온 터다.
이번 신도시 부실공사 「사건」에서 정부가 정말 잘했다 싶은 일이 하나 있다. 수사당국이 섣불리 나서지 않은 것이다.
89년 우지 라면파동에서나 81년 연탄파동때 강도높은 수사권을 발동함으로써 오히려 역작용이 컸다. 경제사건은 너무 예민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앞뒤 고루 재가며 수사해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주었다.
이제 1인당 국민소득 5천달러를 넘는 시대에도 계속 「목표초과 달성」거리를 내놓으려고 무리수를 두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주택부실공사에 대한 대책은 2백만호 건설계획의 15%에 해당하는 신도시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나머지 85%에 대해서도 매우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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