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패스트 패션'의 역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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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2=영국인 조셉 코퍼랜드는 20세 딸과 소매체인 프리마크에 들렀다가 옷을 한 꾸러미나 사왔다. 열 벌 이상이나 되는 옷을 주섬주섬 골라 넣었는데도 총액은 단 12파운드(약 2만2000원). "몇 번 입다 싫증 나면 버리면 된다"고 말한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쉽게 입고 버리는 이른바 저가 '패스트 패션'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은 환경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25일 케임브리지대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IHT는 패스트 푸드가 건강에 위협을 주듯, 패스트 패션은 환경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지속가능한 의류산업(sustainable clothing)'을 논의할 때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 패스트 패션이 오염 초래=미국의 소매체인 올드 네이비.타깃 등에서는 파는 티셔츠와 스웨터 중에는 샌드위치보다도 값이 싼 게 부지기수다. 빠른 유행에 맞추기 위해 '더 싸게,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만들고 관리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쓰레기 양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는 탄소 배출량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

영국의 경우 여성복 판매가 2001~2005년 4년간 21%가량 늘어 470억 달러에 달했다. 반면 이런 옷들은 상당수가 내구 연한 이전에 버려진다. 영국인이 한 해에 버리는 옷은 1인당 평균 30㎏이나 된다. 그나마 자선기관 등에 보내져 재활용되는 것은 8분의 1이 채 못된다. 영국에서 옷의 '대물림'은 거의 사라졌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패션협회 박영숙 과장은 "젊은이들은 연예인 못지 않게 패션에 민감해 업체들도 판매전략 차원에서 새로운 패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해외여행을 떠날 때 한번 입고 버려도 될 만한 저가 의류를 사는 사람이 많다.

◆ 코튼이 친환경? No!=보고서는 패스트 패션에 많이 사용되는 면(綿)에 대한 오해도 지적했다. 면이 화학섬유보다 친환경적이라는 생각은 오해라는 것. 면이 화섬에 비해 생산원가는 덜 들지만, 세탁과 다리미질 등 관리비용을 감안하면 되레 환경에 더 큰 부담을 준다고 한다. 이에 비해 화학섬유는 세탁온도가 면에 비해 낮은 데다 건조기나 다림질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량이 면의 절반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 "의류 렌털 도입해야"=보고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듯 옷을 빌려 입는 방안을 제안했다. 값비싼 웨딩드레스나 턱시도를 빌리듯 계절이나 행사에 맞게 의류도 빌려 입자는 취지다.

영국 유통체인 마크&스펜서는 조만간 친환경 의류 판매를 계획하고 있다. 이 회사는 유기농 식품을 취급하면서 노동력 착취가 심하지 않은 '깨끗한 커피'를 팔기 시작했는데 소비자 인식이 좋아지면서 매출이 오히려 12% 늘어났다.

IHT는 "소비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면 의외로 빨리 '바이 그린(buy green)'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창희 기자

◆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유행이나 계절에 맞춰 발 빠르게 저가의 옷을 대량으로 공급해 파는 방식. 갭(GAP) 등이 이 전략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신 유행 스타일의 옷을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업체로서는 빠른 회전으로 재고 부담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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