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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시민 쏘는 험한 세상(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27일 오후 11시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청송식당앞.
두 이웃간의 사소한 주차시비가 피의 보복극을 부른 김준영 순경(27)의 총기난동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이 실시되고 있었다.
오락실·세탁소내실·슈퍼마킷등 세곳의 끔찍한 총기살인 현장에는 아직도 피가 흥건히 괴어 있었고 김순경은 30여분동안 침착하게 범행을 재연했다.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7백여 주민들 사이에서 『죽여』『죽일놈』등 야유와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국민의 혈세를 거둬 그 생명을 지켜달라고 건네준 총을 개인적인 원한관계로 오히려 시민에게 겨눈 「민중의 지팡이」에 대한 배심감에 주민들은 몸서리쳤다.
총알세례를 피해 달아나 숨어 있던 김성배씨를 뒤쫓아가 살해한 금성세탁소 내실의 검증에 이르자 주민들은 인간적 연민마저 거둔채 인면수심의 김순경을 향한 분노가 더욱 거칠어졌다.
『2년밖에 안된 신혼부부를 피로 갈라 놓아야만 합니까. 나도 이곳에서 죽게해주소.』
남편 성배씨(33)의 살해장면을 지켜보던 부인 박수옥씨(27)가 울부짖으며 실신했다.
마지막 범행장소인 태양슈퍼 안에서 살해된 이미경씨(27)는 4월말에 함께 숨진 남편 박진호씨(30)와 결혼,임신중이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일부 주민들은 경찰의 제지를 헤치고 김순경에게 주먹질까지 하려 달려들기도 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해야할 일을 한것 뿐』이라며 당당한 태도를 취하던 김순경도 검증을 마치며 『아직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고개를 떨군채 가로 저었다.
『경찰이 살인마로,경찰의 총이 흉기가 되어 되돌아오는 세상에 시민의 생명은 누구에게 믿고 의지하겠어요.』
귓전을 스쳐가는 한 주민의 독백은 공인의식이 부족한 경찰관에게 생명을 내맡긴채 오늘을 살아가야하는 국민의 불안감이 짙게 스며 있었다.<의정부=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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