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여성 방치가 결국 노숙자 만드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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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복지시설 등에서 소외된 여성 노숙자를 돌봐 온 공로를 인정받아 11일 YWCA '한국여성지도자상'을 받은 김기혜(金紀惠.58) 수선화의 집 소장.

그는 1998년부터 서울시 위탁 노숙자 쉼터인 '여성 희망의 집'소장으로 일해온 여성 노숙자의 대모(代母)다. 그는 지난해 4월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9천만원으로 전셋집을 구해 여성 노숙자를 위한 보호시설인 수선화의 집을 열었다.

"친구들이 미쳤다고, 나이 들어서 편하게 살지 왜 그런 것을 하느냐고 말리더군요. 그런데 이 일을 하다보면 내 고민도 다 해결됩니다.봉사라는 말이 도리어 거북하죠."

역 주변과 길거리에서 온 몸에 악취가 진동하는 노숙자를 데려오기 수십차례. 포주로 오해를 받거나 심지어 맞은 적도 있었다. 그동안 60여명의 여성 노숙자가 이곳을 거쳐가고 지금도 17명이 머물러 있다.

"우리 집에 있는 많은 여성 노숙자들이 정신질환자나 장애자입니다. 정부위탁시설에는 3개월밖에 있을 수 없는데 시설에서 나오면 다시 거리로 돌아가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제가 보호시설을 연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정부 지원 없이 후원금으로 운영하다보니 사실 어려움도 많다.

"보통 사람들은 '여자가 설거지도 못하느냐. 왜 노숙을 하느냐'고 합니다. 오죽하면 그 지경까지 갔겠어요? 여성 노숙자의 상당수는 고아에다 어린 시절 부모의 구타나 성폭행에 시달린 사람들입니다. 남편한테 폭행당한 경우도 많죠."

사실 이력을 보면 그가 어떻게 여성 노숙자의 대모가 됐는지 궁금증이 인다. "어린 시절 경남 거제에 살 때 성당 사목회장이던 아버지가 성당의 고아원 일을 도우셨어요. 그때부터 어려운 사람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일까. 대학시절에도 서울 아현동 산동네 빈민촌과 종로2가 넝마촌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부모교육 강사로 활동했다.

"봉사를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평범한 제가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수선화의 집=02-2644-0713.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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