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세중나모여행 천신일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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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중나모여행은 지난 25년간 기업체를 상대로 하는 상용(商用) 여행 분야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포스코 등 500여 개 기업이 주고객이다. 고객층이 튼튼하다 보니 그동안 적자 한 번 안냈다. 아무리 급해도 세중에 말하면 구하지 못할 표가 없고,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회사를 이끄는 천신일(64.사진) 회장은 여행사 대표보다 '100억원을 기부한 인물'로 더 알려져 있다. 지난해 10월 자신의 회사 주식 110만5000주(당시 평가액 약 110억원)를 고려대.연세대 및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부한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성악가 조수미 씨 등과 함께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천 회장의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2년 포항공대가 세워질 당시 학교 부지 6만3000평을 선뜻 내놓았다. 이 외에도 각종 사회단체나 기관에 수백만~수억원대 도움을 알게 모르게 많이 줘왔다.

23일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빌딩 집무실에서 만난 천 회장은 푸근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다. "요즘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마음 편하고 기분이 좋기 때문인가요." 천 회장에게 기부 이야기를 꺼내자 돌아온 첫 대답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땐 홀어머니에게서 논 10마지기(1500평) 물려받은 게 전재산이었죠. 이만큼 재산가가 된 것은 지금까지 여러 곳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덕분입니다. 도움받은 걸 나누자는 것이죠."

그는 주식을 기부했어도 우호지분을 포함해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어 경영권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다만 기부하면 좋은 일 했다고 주가가 오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떨어져 의아하단다.

천 회장은 2000년 경기도 용인에 5000평 규모의 세중 옛돌 박물관도 설립했다. 이곳엔 1만여 점의 석물이 전시돼 있다. 설립 이듬해 일본에 유출됐던 문인석 등 석물 70점을 환수해 이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일본인 소유자가 처음 부른 가격이 너무 높았어요. 그런 그를 한국에 초청해 몸에 좋다는 한약을 만들어 주고 집 사람이 맛있는 김치를 담아주고 해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70점 가운데 17점은 돈을 주고, 나머지 53점은 증여 형태로 받았죠."

82년 여행사를 창업했지만 그는 그 이전에 사업을 한 경험이 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천 회장은 졸업 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하다 72년 결혼하면서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73년 장인과 함께 동양철관이라는 회사를 인수해 1년 정도 일하다 74년 제철화학이란 회사를 만들어 독립한 것이다. 코르타르 에나멜이란 철관부식 방지제를 만들어 포항제철에 납품해 돈도 제법 벌었다. 77년 이 회사를 판 이후 동해산업.한국과산화공업 등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다 82년 세중여행을 설립하며 여행업에 뛰어들었다.

"일본 등 해외를 다니다 보니 선진국은 여행업이 발달했더군요. 한국도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있으니 유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여행업을 통해 사업 수완을 발휘하고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아픔도 있었다. 게임기사업이다. 그는 2002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MS)사의 게임기 X박스의 국내 사업권을 따 '세중게임박스'를 세웠다. 당시 정보기술(IT) 열풍을 타고 사업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하지만 불경기에다 게임 타이틀 부족 등으로 부진해 지난해 사업을 접어야 했다. "사업에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MS가 동양인이 좋아하는 게임을 많이 내는 지금쯤 했다면 좀 달랐을지…"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소프웨어 개발 계열사 나모인터랙티브와 세중여행을 합병하면서 사명을 세중나모여행으로 바꿨다. 앞으로 세중나모여행을 상용뿐 아니라 개인여행 분야에서도 국내 선두로 키울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투어몰이라는 여행업체를 인수했다. 앞으로 미국.유럽 등지에 해외지사도 설립할 계획이다.

그는 "기부도 하고 박물관도 세웠지만 기업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익 창출"이라며 "이익을 많이 내되 3등분해 주주.종업원 및 재투자에 쓰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글=염태정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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