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경제공동체 멀잖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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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주 경제공동체가 가시권으로 접어들었다.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 3국은 지난 12일 올해 안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실무회담을 시작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미 2년 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 멕시코의 가입이 결정되면 인구 3억6천만 명에 국민총생산(GNP) 6조 달러의 세계 최대 북미 자유 무역권이 등장하게된다.
한편 올해 초 멕시코와 중미국가들은 오는 96년까지 시장통합을 하기로 다짐했다.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 등 남미국가들은 오는 96년까지 자유 무역권을 만들기로 하고 지난 19일 미국과 무역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칠레·콜롬비아·베네수엘라·멕시코도 또 다른 무역자유화협정을 준비중이다.
중남미국가들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해 6월 부시미대통령이 제창한 이른바 「알래스카에서 아르헨티나까지」라는 거대한 통합 경제권 창설구상에 단계적으로 부응하려는 것이다.
외채와 고 인플레 및 정치불안에 시달려온 중남미국가들은 대미종속을 우려한 전통적인 수입 대체산업육성전략을 버리고 이제는 수출지향적인 경제부흥목적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특히 유럽공동체(EC)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세계무역의 지역주의강화추세와 함께 중남미 국가들은 부시대통령이 제안한 미주경제공동체 구상에 이들 국가가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EC와 달리 국가간 경경규모와 능력의 격차가 심한 미주국가들이 경제공동체창설구상을 쉽사리 실현하기에는 장애가 많이 가로놓여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해는 항상 엇갈리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시작된 미·가·멕시코의 자유무역협정협상의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멕시코의 경제규모는 국토의 크기와는 달리 미국의 10분의1, 캐나다의 10분의1에 머무르고 있다..
시간당 최저임금도 미국이 4달러25센트, 캐나다는 3달러 7센트인데 반해 멕시코는 54센트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3국의 격차로 인해 이번에 시작된 미·가·멕시코간 협상의 성공여부가 미주경제공동체구상의 실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되고 있다.
이와 달리 경제력의 격차가 바로 시장통합을 촉진할 수 있는 강점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는 가장 큰 표면적인 이유는 멕시코의 싼 노동력을 활용, 미국상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이자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낮은 임금으로 생긴 여유자금을 연구개발비에 보다 많이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란 장점도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이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아온 멕시코인 불법이민을 억제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있다.
미국은 멕시코 경제의 활성화로 매년 50만 명씩 체포됐던 멕시코의 밀입국자들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멕시코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외국기업의 국내투자를 늘려주고 수출·고용도 증대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체결이 추진된다는 소식에 멕시코에는 벌써 지난 한 해 동안 45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캐나다에도 지난해 16년만에 처음으로 해외자금의 국내투자가 43억 달러나 발생한 사실이 멕시코의 자금유입에 대한 기대를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미·가와의 무역자유화협정이 멕시코의 경제에 희망을 안겨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우려도 있다. 미·가와의 보호막 없는 싸움으로 경쟁력이 없는 멕시코의 중소기업이 오히려 타격을 받을 수도 있고 미국에의 경제적 종속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비관론자들의 지적이다.
멕시코는 이를 막기 위해 해외도입자금과 기술의 다변화를 바라고 있다.
멕시코는 무역자유화협정체결의 이점을 이용, 미·가에의 시장접근에 점점 더 어려움을 느끼는 구주·일본, 특히 아시아의 중진공업국들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3개국 사이에도 원산지표시의 기준이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번 협상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문제는 미·가와 멕시코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부분이다.
미국으로서는 가뜩이나 국제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구주·일본 및 아시아중진국들이 무방비로 멕시코라는 저임금과 무관세통관을 이용, 멕시코에 진출할 경우 이를 수수방관하지 않을 태세다. 이에 대응, 멕시코는 해외자금도입으로 얻게될 이익을 포기하지 않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미·가 양국은 상대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물품의 경우 자국 내에서 생산된 부품을 50%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무역자유화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이들 두 나라는 멕시코와는 자국 부품 사용비율을 75%까지 높이려는 움직임이다.
게다가 부시 미 대통령은 멕시코의 저임금노동력을 노려 미국의 기업이 멕시코로 빠져나가는데 따른 미국의 실업증가를 막고 미국 공해산업이 공해에 대한 규제가 낮은 멕시코로 무분별하게 진출하는 것을 억제하는 등의 방안을 협정문안에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의회에 약속, 협상의 전망은 더욱 순탄치 않다.
그러나 92년 유럽 시장단일화 등의 추세로 볼 때 우루과이라운드협상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미주경제공동체구성을 요구하는 미국 및 중남미국가들의 국내 정치적 압력이 계속 가중될 전망이다.
이 같은 세계시장질서의 변화에 맞서 한국이 국제경제의 고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한국경제를 하루빨리 국제화하는 길을 모색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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