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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알을 모래알처럼 씹으며 산 32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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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3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뒤 유족들이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송상진씨 부인 김진생씨, 도예종씨 부인 신동숙씨, 하재완씨 부인 이영교씨, 여정남씨 조카 여생화씨.[사진=김경빈 기자]

"지난 32년은 쌀알을 모래알처럼 씹으며 살아온 시절이었습니다. 이제야…."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희생자들의 유족 대표인 이영교(72)씨는 법원이 이 사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하자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고 하재완(당시 44세)씨의 부인이다. "피고인들은 무죄"라는 재판부의 선고가 나오자 이씨 등 유족들은 지금까지 참았던 한을 내뱉듯 눈물을 흘렸다. 재판장의 선고가 이어지자 유족과 취재진들로 120여 석을 가득 채운 법정 곳곳에선 박수소리도 터져나왔다. 유족들은 억울한 누명을 벗게 돼 기뻐하면서도 "억울해"를 연방 되뇌기도 했다.

33년 전 비상보통군법회의가 열리던 날, 이씨 등 유족들은 방청석에서 숨을 죽인 채 재판을 지켜봐야 했다. 사형이 선고되는 순간에도 제대로 울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이젠 백발의 노인이 된 이씨 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희생자들을 대신해 재심 선고공판이 열린 이날 피고인석에 자리했다. 유족들은 "사필귀정"이라면서도 "슬픔과 인내로 버텼던 지난 30여 년을 이 한마디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서럽다"고 말했다.

이씨는 1974년 4월 목욕탕을 간다며 집을 나선 남편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비상보통군법회의 재판정에서 민청학련의 배후인 인혁당 재건위의 핵심 멤버로 조작돼 피고인석에 선 남편과 재회했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형 판결은 불과 18시간 만인 75년 4월 9일 집행됐다.

이후 이씨는 5남매를 하루아침에 혼자 떠맡게 됐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79년 유신정권이 무너지고 87년 민주화가 찾아왔지만 이씨를 포함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 유족들에게는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다. 이씨 등은 직접 봄을 찾아 나섰다. 2000년12월 민주화유가족협의회와 함께 시작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천막농성을 통해서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고문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고 발표하면서 30년간 짓눌려 왔던 짐을 덜게 됐다. 그리고 이날 마침내 법원의 무죄선고를 받아냈다. 이씨는 "진실은 살아 있고 정의에는 뒤따르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74년 중앙정보부는 하재완씨 등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인민혁명당을 재건한 뒤 민청학련 등 학생운동권을 배후에서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24명 중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또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여정남씨도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들 8명은 대법원 선고 이후 18시간 만인 75년 4월 9일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됐다. 제네바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장혜수 기자<hschang@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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