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문호 크게 확대 불법 체류자도 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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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얼굴) 미국 대통령이 남은 임기 2년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이민정책 개선을 제시할 방침이라고 AP통신 등 미국 언론들이 22일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23일 오후 9시(한국 시간 24일 오전 11시) TV로 생중계될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에서 의회와 협조해 이민 문호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힐 예정이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불법 이민자들에게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며,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초청 노동자'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등 이민 문호를 확대해야 한다"며 의회에 조속한 입법 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등 양원의 민주당 지도부도 불법 체류자를 구제하는 방안에 찬성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최근 민주당이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를 발표하면서 이민 개혁안을 포함시켰다.

공화당이 양원을 지배한 지난해 상원에선 초청 노동자 프로그램 도입을 포함, 불법 체류자들에게 합법적 이민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의 이민개혁 법안을 가결했으나 하원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됐다. 그러나 이번 110대 의회에선 이민 개혁에 대체로 찬성하는 민주당이 양원을 장악함으로써 이민 법안 처리 전망은 훨씬 밝아졌다. 그러나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이 여전히 불법 체류자 구제에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에서도 보수 성향의 의원이나 노조를 의식하는 의원들이 공화당과 보조를 맞추고 있어 법안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왜 이민 문호 넓히나=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의 누구보다도 보수 성향이 강하지만 이민 문제에 대해선 비교적 진보적이다.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 이민자가 많은 텍사스 주지사를 지냈고, 최고 통치자로서 경제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사실 3년 전에 초청 노동자 프로그램을 처음 꺼냈다. 지난해에도 이 프로그램을 입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의원들이 도와주지 않았다.

불법 체류자를 구제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이미 정지작업에 착수했다. 쿠바 출신으로 자신의 이민 정책을 지지해 온 멜 마르티네스(60.초선.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이 19일 공화당의 중앙당 격인 전국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마르티네스는 취임사에서 15세 때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원수의 압제를 피해 미국에 밀입국했다는 자신의 과거를 소개하면서 "당은 미래를 위해 모든 이민자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계도 요구=경제계도 오래전부터 이민법 개혁을 주문해 왔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이민 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지고,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재계는 인력난을 겪기 시작했다. 멕시코 출신 저임금 인력에 의존해 온 캘리포니아 농장주들은 일손을 구하지 못했고, 실리콘 밸리도 외국 출신 정보기술(IT) 전문가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경제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시간당 7.25달러)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힘든 업종에서 일해 온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대거 추방될 경우 노동집약산업은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들도 세계 각국의 우수 학생이 미국으로 덜 유입된다며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미국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초청 노동자(guest-worker) 프로그램=미국 내 불법 체류자에게 임시 노동카드를 발급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골자다. 노동카드를 받은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불법 딱지를 완전히 떼어 주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현재 미국의 불법 체류자는 한인 약 20만 명을 비롯해 1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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