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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황청 그리고 병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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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중국의 고대 병법을 공부한 모양이다. 지난주 교황이 "중국과 수교를 하겠다"고 한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51년 중국 공산정권과 단교 후 56년 동안 중국의 인권과 종교자유 문제 등을 강하게 비판하던 교황청이 이제 중국과 손을 잡을 때가 됐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바티칸에선 중국 정책을 놓고 열띤 토론이 있었다. 거물급 추기경들이 대부분 참석해 의견을 내놨다. 토론은 중국의 인권 문제와 종교자유 문제를 계속 비판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감안해 일단 수교하고 우호정책을 펴야 한다는 온건파로 갈렸다. 결론을 못 낸 참석자들은 토론 결과를 정리해 교황에게 보고하고 고견을 구했다. 교황은 "지금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해야 할 때"라고 결론을 내렸다. 관심은 "왜 지금인가"에 쏠렸다.

홍콩의 성령연구센터의 지아니 크리블러 신부의 해석은 이렇다. "중국은 2008년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종교 자유가 없고 인권 후진국이라는 국제적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교황은 중국의 이 같은 약점을 간파하고 있다." 중국과 수교할 경우 초기에는 베이징 당국의 통제로 다소 어려움을 겪겠지만 결국은 '13억 복음시장'은 열릴 것이고 대규모 국제행사를 앞둔 지금이 중국에 진출할 적기라는 게 교황의 판단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교황의 이 발언에 대해 즉시 환영의 뜻을 표했다. 바로 협상을 시작하자는 제의도 했다. 교황청의 속셈을 모를 리 없는 중국이 왜 이렇게 신속하게 화답했을까. 홍콩의 문회보(文匯報)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전국시대(기원전 403~기원전 221년) 초(楚)나라 고관이었던 비무극은 정적 극완을 제거하려 했으나 힘이 없었다. 비무극은 재상 낭와를 극완의 집으로 초대해 연회를 베풀게 하고 극완이 가진 여러 무기를 자랑하도록 했다. 낭와는 연회석상에 무기가 나오자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알고 극완을 처형했다. 남의 힘을 빌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병법 제3계인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이다.

중국은 교황청과의 수교 자체가 종교자유가 없다는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수교 후 교황청의 중국 인권 문제 거론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어 중국으로선 일거양득(一擧兩得)인 셈이다. 이뿐이 아니다. 수교 전 교황청은 대만과 단교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은 앉아서 대만 고립을 강화시킬 수 있는 부수입까지 얻을 수 있다. 물론 중국 내 천주교 신자의 증가로 인한 정치적 위협이 예상되긴 하지만 이는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중국 당국의 자신감도 배어 있다. 아직 어느 쪽 계산이 옳은지는 모른다. 다만 중국과 교황청이 각자의 판단에 따라 이념과 과거를 묻어둔 채 모든 전략을 동원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형규 홍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