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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진로 교육 실태|「대학병」에 밀려 공백 상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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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에 가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빗나간 교육열과 사회의 그릇된 가치관 때문에 많은 중학생들이 올바른 직업·사회관을 갖지 못하고 진로 문제로 방황한다.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관계없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업 전선에 뛰어든 학생들은 결국 고학력 실업과 청소년 범죄 증가라는 사회 문제를 낳게 된다. 중학교 때부터 진로 교육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 올바른 가치관·직업관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 제기되고 있다.
◇문제 제기=서울시 교육 연구원 (원장 심광한)은 지난 12일 한국 교총 회관에서 「중학교 진로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현재 중학교에서는 진학 교육만 있을 뿐 진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사회 문제와 더불어 근로 인력 수급에도 왜곡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 서울 목동중 교장은 『사회 문제가 돼 있는 무기능 비행청소년 증가는 학생과 학부모의 무조건적인 대학 선호에 대한 「한풀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직업이 없는 학생들은 사회 구조의 주변에 위치하게 돼 자조감과 함께 쉽게 탈선의 길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특히 실업계 고교는 82년 이후 육성되지 못하고 있어 이들의 사회에 대한 불만과 반발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했다.
중앙대 홍기형 교수도 『중학교에 상담 교사가 있지만 진로보다는 성적과 이에 따른 학교·학과 선택이 전부』라고 말하고 『장래 갖게될 직업에 대해 적성과 여건을 감안한 정보를 제공,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진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학교에는 상담 교사 자격증 (대학원 학위) 취득자보다 고령의 교도 교사 자격증 취득자가 많은데다 행정·재정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전문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로 선택 실태=교육부의 90년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중학교 졸업생 81만6천9백94명 중 95·6%인 79만9천5백49명이 고교에 진학했으며 이 가운데 63.3%가 일반계고교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중앙대 홍기형 교수가 지난해 서울 시내 고교 2학년생 2백5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고교 계열 선택의 만족도는 ▲일반계 42% ▲공업계 26% ▲상업계 39% ▲예능계 78%로 분석됐다.
결국 예능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학생들이 자신의 희망과 동떨어진 계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들 학생들은 일반계 고교의 경우 졸업 후 47.1%만이 대학에 진학했을 뿐이고 (지난해 기준) 9.9%는 취업, 나머지 43%는 군입대하거나 실업자가 됐다.
반면 실업계 고교 졸업생은 76.6%가 취업했고 8.2%가 진학했으며 실업자가 되거나 군입대한 학생은 15.2%에 불과했다.
한편 대졸 고학력 실업도 크게 늘어 지난해 전체 졸업생 28만3천4백63명 중 39.6%가 「취업 재수생」 명목의 실업자가 됐다.
그럼에도 학부모와 학생들의 「대학병」 때문에 중학생의 일반계 고교 진학은 해마다 증가, 86년 고교 재학생이 1백34만5천4백14명이던 것이 90년에는 1백47만3천1백55명으로 9%가 늘었다.
그러나 정부의 실업계 고교 육성 방침에도 불구, 실업계 고교 재학생은 86년 91만6천9백83명에서 90년에는 81만6백51명으로 오히려 12%나 줄었다.
◇문제점=서울 신서중 이재문 교사 (36)는 『학부모들의 맹목적인 대학 진학열이 중학교 때부터 일고 있다』며 『능력과 적성 때문에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는 학생들이 좌절감과 죄책감 때문에 비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이같은 그릇된 교육열 때문에 공업계 고교를 선택한 학생들의 경우 『망치과에 간다』며 자신을 비하, 올바른 직업관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홍기형 교수는 설문 조사 결과 대부분의 중학생들이 고교 계열 선택 때 극히 제한적인 지식 밖에 없었으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구체적인 지도를 받은 일이 없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중학교에서는 선교·선과 지도만 있을 뿐 진로 지도 계획·진로 의식 조사 등 지도 체제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진로 지도는 고교나 대학에서 세우면 되고 중학교에서는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식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이와 함께 사회의 직업 및 학력 차별화도 중학생 진로 지도에 애로가 되고 있다.
신서중 이 교사는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가 엄청나고 승진의 기회도 차이가 큰 상황에서 직없에 귀천이 없다는 교육은 공허할 뿐』이라고 말했다.
◇개선 대책=권길중 서울 청담중 교장은 『각급 학교에 다양한 자료를 구비한 진로 정보실을 운영하고 연수 및 사례 발표 등을 통한 진로 상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진학도 멀리 보면 직업을 갖기 위한 중간 단계 개념인 만큼 개개인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탐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 이를 기초로 계열별 고등학교 및 취업 등 선택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건국대 김충기 교수도 『정규 수업 시간 및 교과를 통해 올바른 직업관 및 사회관을 심어주는 직업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정숙 교사 (서울 면목중)는 『중학생들의 진로 문제 방황은 가정·학교·사회의 공동 책임』이라고 전제, 『가정에서는 애정 어린 대화를, 학교에서는 개인의 소질과 적성을 살리는 자아 실현 교육을, 사회에서는 직업간·학력간 차별 해소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일선 교사들은 『학부모들이 보상 심리, 또는 사회적 체면 등을 이유로 무리하게 진학 욕심을 내 도피성 해외 유학까지 시키는 등 빗나간 교육열을 바로 잡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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