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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기업 살아나니 사람들 돌아오고 경기 좋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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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07년 지금은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으로 치달았다. 사람들은 한보철강 부도를 외환위기의 씨앗이라 불렀다. 당진은 피폐한 1997년 한국 경제의 자화상이었다. 그로부터 10년, 2007년 당진엔 한국 사회가 지난 10년간 겪은 아픔과 질곡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외환위기 10년 동안 잉태된 희망도 살뜰하게 담겨 있다. 당진의 10년은 한국의 10년이다.

"한보철강이 부도나기 전엔 여관에 예약을 해야 방을 구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식당도 연일 문전성시였지요."(강연식 당진군 경제항만과장)

97년까지만 해도 당진은 소위 '잘나가는 군(郡)'이었다. 한보철강이 수조원을 들여 공장을 지으면서 당진은 유사 이래 최고의 호경기를 누렸다.

"당진엔 강아지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진의 경기는 한보철강에 목을 매고 있었다. 그 한보가 부도를 내자 상황은 곧 반전했다. 한보철강에 납품하던 지역 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식당도, 술집도 문을 닫았다. 강 과장은 "상권이 무너지자 인심마저 흉흉해졌다"고 회상했다. 길거리 경기는 바닥을 모를 만큼 침체했다.

어둠은 어둠만 품고 있지 않다. 어둠이 가장 짙을 때 새벽이 찾아온다. 2001년 말 서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서해안고속도로가 당진을 통과했다. 구불구불한 지방국도로 네 시간을 달려야 했던 서울이 한 시간 거리로 가까워졌다.

한보철강도 2004년 마침내 현대제철이란 새 주인을 찾았다. 현대제철은 짓다 만 채 내버려져 있던 B지구 공장들을 정상화하면서 당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시골 포구였던 당진항은 수만t짜리 선박이 쉴새없이 쇳덩이와 철강제품을 실어나르는 번듯한 산업항으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도로와 항만, 일감을 갖춘 대형 공장은 다른 공장을 불러모으는 삼박자다. 협력업체들이 당진으로 내려왔다. 산업단지와 농공단지가 공장들로 가득 찼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당진이 살아났다.

당진군 당진읍 원당리와 읍내리. 3년 전 이곳의 논밭과 야산들이 사라졌다. 산을 깎은 자리에 고층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3000여 가구가 입주했다. 신시가지가 조성되고,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다. 신도시 건설을 방불케 하는 '상전벽해'다.

이게 다가 아니다. 당진읍내엔 지금 분양 중인 아파트만 해도 4000가구나 된다. 평당 500만원이 넘는데도 속속 분양되고 있다. 한보철강 이후 건설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짓다만 채로 내버려져 있던 아파트까지 최근 2~3년 사이에 죄다 분양이 끝났다.

김진성 당진군 주택팀장은 "공장들이 입주하면서 당진에 아예 터를 잡고 정착하려는 이들이 늘어나 아파트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아파트 공급은 계속될 예정이다. 당진군은 올해 당진읍에만 51만여 평의 택지개발지구 공급에 착수한다. 앞으로 1만여 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대규모 단지가 세워질 전망이다.

해안선은 더 달라졌다. 현대제철과 동부제강 등이 자리 잡은 해안가에 산업용 부두들이 잇따라 들어서 있다. "10년 전엔 항만 개념이 없었어요. 시골 포구였지요. 지금은 항만이 생겨서 기업들이 당진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이일순 당진군 항만정책팀장)

현재 당진항의 선석(배를 대는 곳) 수는 7개. 지금도 부두 공사는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당진항은 2020년까지 50선석을 더 만들어 연간 9000만t의 처리능력을 갖춘 국제 무역항이 될 계획이다.

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린 데 이어 당진을 가로세로로 관통하는 국도들도 넓어지고 연장됐다. 대표적 산업단지인 고대.부곡단지와 현대제철소 앞에는 6차선 국도가 달린다. 당진~대전을 잇는 고속도로도 2009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되고 있다. 당진읍의 신시가지 주변엔 없던 길이 반듯하게 놓였다. 한마디로 '리모델링 당진'이다. 박근규 당진군 기획감사실장은 "몇 년 전부터 당진은 오기만 하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귀띔했다.

당진의 부활은 인프라와 기업의 합작품이다. 2001년 말 개통된 서해안고속도로와 당진항이 이곳에 사통팔달의 기초를 깔았다. 그 위에 현대제철.동부제강.환영철강.중외제약 등 기업들이 들어서 당진의 새로운 골격을 만들었다.

이들을 뒤따라 내려온 중소기업들이 당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2003년 이전 280개였던 당진의 기업 수는 지난해 말 551개로 늘었다.

당진의 또 다른 변화는 인구다. 일자리가 생기면서 97년 이후 5년 내리 줄기만 했던 당진의 인구는 지난해 말 드디어 97년 수준을 회복했다. 이젠 인구 15만 명이 넘어야 될 수 있는 '시'승격을 노리고 있다. 당진군은 4~5년 뒤엔 인구가 20만 명을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람과 공장이 몰리면서 부동산값은 크게 뛰었다. 2억원을 넘는 30평형대 아파트가 적잖다. 지난해에는 개별공시지가가 33% 올랐다. 공단 주변 땅값은 평당 100만원을 넘기도 한다.

당진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글=이상렬 기자<isang@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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