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38. 윤이상 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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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작곡가가 되기 위해 독일로 향하던 윤이상 선생의 청년 시절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윤 선생과 함께 잠시 머물렀던 프랑스 파리의 그랜드 호텔 전경이다.

1956년 이른 봄, '예술의 도시' 파리를 향해 들뜬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7~8 시간을 비행한 뒤 홍콩에 도착, 하룻밤을 묵고 주 1회 운항한다는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홍콩에서 파리까지는 2박3일이 걸린다. 비행기는 급유를 위해 네 시간 마다 착륙했다. 잠이 들 만하면 스튜어디스가 "미스, 일어나세요. 내려야 합니다"하고 깨우곤 했다.

비행기가 급유를 위해 이란의 테헤란 공항에 착륙했을 때 안내원이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갈아타야 하는 비행기를 놓쳐 파리에 가려면 이곳에서 이틀을 묵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는데 같은 비행기의 승객 가운데 한국 남성이 한 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그 분은 건장한 체격에 수수한 외모를 지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혹 나중에 뒷말이 날까봐 조심스럽게 처신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빼고는 세련된 분이었다. 먼저 그 분이 "나는 독일로 음악 공부를 하러 갑니다. 춘향전 오페라를 완성하기 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미스 노는 무슨 공부를 하러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물었다. 이 남성의 이름은 윤이상이었다.

유명한 작곡가인 그 분을 나는 알아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 분이 춘향전 오페라 이야기를 할 때의 비장한 표정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던 순간은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파리에 도착해 공항에서 호텔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걸고 있는데, 옆에 있던 윤 선생이 자기 방도 예약해 달라고 했다. 밤에 공항을 나서니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내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그 분은 말없이 웃옷을 벗어 내 어깨에 걸쳐 주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호텔에 도착해 서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이후 윤 선생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늦은 저녁 시간이지만 차 한 잔 정도는 함께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오히려 약간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잠이 든 지 몇 시간 쯤 흘렀을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오전 6시였다. "네-"하고 전화를 받았더니 그 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스 노, 저는 지금 떠납니다. 이 호텔의 하룻밤 숙박비는 내 한 달치 생활비에 가깝더군요. 아무튼 미스 노께서도 성공하시기를 바라며 작별 인사를 합니다"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호텔은 그레타 가르보의 영화에 등장했던 '그랜드 호텔'이었다.

훗날 윤 선생은 동백림(東伯林) 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으로 압송돼 옥살이를 하는 등 곤욕을 치르시다가 겨우 독일로 망명,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윤 선생은 생의 목표이던 춘향전 대신 심청전 오페라를 쓰셨지만 고국 땅에서 콘서트 한 번 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시게 되어 나는 마음속으로 남다른 아픔을 느낀다.

노라 ·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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