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주의 벗고 작품성 따져야-계간 『현대예술비평』 좌담서 객관비평 폐단지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과학적 형식주의, 한가지 경향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정치주의 비평이 참작을 위축시키는 비평시대는 청산되어야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계간으로 창간된 비평전문지 『현대예술비평』은 창간특집으로 이상섭·유종호·김욱동·한기씨 등 4명의 문학이론가들이 참석한 좌담「전환기의 문학비평」을 통해 지난 시대의 문학비평의 공과를 따지고 앞으로의 방향을 전망했다.
이 좌담에서 한기씨(서울시립대 강사)는 『80년대 비평은 객관적·이론적 비평이 그 어느 때보다 승했던 시대』라며 객관적 이론을 앞세운 과학주의가 80년대 평단의 모습이었다고 진단했다. 이 과학주의는 한편으론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내세우는 마르크스주의로, 다른 한편으로 작품 자체만을 과학적으로 해부한 형식주의 혹은 구조주의라는 두 갈래로 나타나 한국문학의 이론적 성찰에 크게 기여한 면도 많으나 작품으로서의 문학 창출을 크게 위축시킨 면도 없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상섭씨(연세대교수)는 80년대 평단을 『정치성 비평의 심화가 돋보인 시대』로 보았다. 이씨는 『정치성 비평의 가장 큰 약점은 배타적 공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부풀린 수사법』이라며 『남을 압도해 정의를 독점키 위한 이러한 수사법은 중도이론이 설 땅을 없게 만들었다』고 정치성 비평을 비판했다. 부풀린 수사법인만큼 객관성은 적고 추상적이며, 비평이 문학의 실제와는 크게 벌어지게 했다는 것이 80년대 마르크스주의 비평에 대한 이씨의 지적이다.
한편 김욱동씨(서강대교수)는 『20세기 말엽은 흔히 후기 산업사회·정보화시대·컴퓨터시대, 혹은 포스트모던사회라는 꼬리표로 요약되고 있듯 놀라운 변화에 접어든 역사적 전환기』라며 이 전환기에 걸맞게 문학과 문학비평도 새롭게 조명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제 『문학비평의 기능이나 임무는 단순히 주어진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을 뛰어넘어 나름의 독자성과 자기목적성을 지녀야한다』고 내다봤다. 즉 문학비평은 이제 문학작품이라는 주인을 섬기는 비천한 하녀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비평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김씨의 주장이다.
유종호씨(이화여대교수)는 절대권력의 지배를 받던 암울한 시대를 지나 『백화쟁명하는 분위기 속에서 좋은 비평이 나올 것 같다』며 앞으로의 평단을 낙관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앞으로 도래할 백화쟁명의 비평시대, 독자와의 유리된 상태의 비평행위는 경계해야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독자와 유리된 상태에서의 논쟁을 위한 비평은 지적 유희에 빠질 염려가 있고 또 작품현장으로부터 멀어질 위험이 있다는 게 유씨의 지적. 유씨는 『기본적으로 비평이라 하는 것이 일차적으로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생산되는 문학작품 가운데 읽을만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라며 현장과 유리되지 않은 비평의 다양한 전문화를 통해 그 기능을 수행해야만 졸속적인 대작주의나 문학의 상업성으로부터 독자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봤다.
좌담 참석자들은 역사적·문화적 대전환기에 처해있다는 시대인식을 같이 하면서 이 전환기를 맞아 다른 어느 때보다 비평의 면모가 다양하고 풍성할 것을 전망했다. 비평적 정신은 언제나 위기적 국면·전환기적 국면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