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후보들 자역살림은 우리손에…(광역 표밭을 가다:1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공해등 민생 내세워 남성 공략/대부분 자금·조직력 약해 “맨발작전”/사회운동가 많아… 택시운전사·보통주부까지/운동원 입을 한복·현수막 직접 만들어 알뜰운동/역대 총선·공천에서 떨어진 남편 대신 나서기도
「여성의 권리는 여성의 힘으로!」「알뜰 살림꾼을 시의회로」「함께 사는 인간교육의 실현을!」. 전국 시·도 광역의회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64명(서울 22명)의 여성후보들이 여권신장·인간교육실현·식품공해추방·맑은물 공급 등 가정주부들의 피부에 와닿는 민생공약을 내걸고 남성후보들에게 과감히 맞서 한판승부를 겨루고 있다. 이들은 「매니큐어 바른 며느리를 어떻게 광역의회로 보낼 수 있겠는가」라는 남성후보측의 공격을 「아직도 남성상위의 환상을 버리지 못한 남자가 있느냐」고 되받아 치는등 「맹렬여성」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후보들은 대부분 조직력·재력·지명도에서 남성후보에게 훨씬 뒤져 광역의회선거에서 「여성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각 지역 여성후보들의 활동상황을 점검해 본다.
▷서울◁
성동 8선거구에서는 88올림픽 한국여자선수단 총감독,국제정구연맹회장 등을 역임한 여류체육인 조정순 후보(62·민자·대한체육회 부회장)가 박수열(56·신민·회사대표) 최경원(39·민주·변호사) 후보 등과 맞서 예측불허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조후보는 점퍼·바지·운동화 차림으로 지하철역등을 누비며 표밭을 다지고 있다.
중랑 3선거구에서는 이상덕 후보(34·신민·전 박영숙 신민부총재 비서관)가 최상혁 후보(57·민자)와 당대 당의 맞대결중. 이후보는 전교조 해직교사인 남편과 함께 시장바닥등을 누비며 맨투맨 작전을 전개.
호적나이 정정으로 물의를 빚은 마포3 이선희 후보(27·민자·가수)와 망원동 수해피해소송을 승소로 이끈 마포4 한정자 후보(36·민주·주부)는 막강한 여성후보들. 이후보는 인기가수라는 유명세를 이용,고운봉·현철·최주봉·나한일씨 등 동료가수·탤런트 등을 동원,젊은 유권자층을 파고 들고 있다.
한후보는 전교조 해직교사인 남편과 함께 서민층을 파고들어 『지역민원 해결사가 되겠다』며 전력을 내세우고 있다.
서대문5 김순애 후보(40·민자·건축회사 대표)는 택시운전사·쌀장사 등을 하며 건설회사를 일으킨 억척 또순이. 김후보는 민자당 조직기반과 튼튼한 재력을 바탕으로 입지전적인 경력을 앞세우고 있는데 같은 선거구의 여성후보 민원숙씨(51·민주·정당인) 또한 장면 전 국무총리 비서관을 지내는등 만만찮은 경력의 소유자여서 두 여성후보의 대결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성동 6선거구에서도 최차해(54·민자·병원장),성선녀(40·민주·전 KBS성우) 후보 등 두명의 여성후보가 두명의 남성후보와 4파전을 벌이고 있다.
최후보는 자신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1만여명의 주민을 중심으로 득표활동을 하고 있으며,성후보는 지역주민들에게는 낯선 얼굴이나 합동유세장에서 빼어난 연설솜씨로 청중을 사로잡고 있다.
○연설솜씨도 탁월
전 서울시 기획실장 김인동 후보(56·민자)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영등포4 이정자 후보(49·무소속·전 신문기자)는 언론인인 남편 안병찬씨(54·시사저널 편집인)의 후광을 업고 시민연대회의 및 여성단체 자원봉사원 등과 함께 선거구인 여의도일대 아파트촌을 누비고 있다. 이후보에게는 학교동창·친구들도 물심양면으로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소문.
가정복지연구원을 설립,자녀·부부문제들의 상담역을 맡고 있는 강동6 김정자 후보(48·무소속)는 연구원 상담원을,도봉2 전풍자 후보(47·무소속·학부모 연대회의 상임대표)는 시민연대회의·YWCA 회원 등 무료봉사원을 각각 동원,득표활동에 나서고 있다.
성북6 박미원 후보(35·민주·경실련 소비자운동 사무국장)는 런던대 정경대학원을 졸업한 재원.
박후보는 금권선거에 맞서기 위해 선거비용을 최소화한다는 각오로 무료봉사원만을 운동원으로 쓰고 있다.
양천1 이동성 후보(36·무소속·전 KBS리포터)는 선거운동원으로 아버지·언니 등 4명만을 등록시키고 양원모 후보(46·민자·지구당 간부)등 5명의 남성후보와 맞서 고군분투.
이후보는 「공약」을 남발하기 싫다는 이유로 공약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유일한 후보이기도 하다.
동대문2 김을동 후보(46·민주·탤런트)는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후보는 김창숙·사미자·박주아 등 유명 탤런트들의 측면지원을 받으며 가족·친지를 동원,표밭을 일구고 있다.
동대문4 고기효 후보(51·민주·사회사업)는 12대 국회의원선거에 무소속으로 입후보했다가 낙선,이번 선거에 재도전한 의지의 여인. 「가난한 서민의 길잡이가 되겠다」며 영세상인등 서민계층을 상대로 동분서주.
○연예인 나서 지원
중랑 3선거구의 이상덕 후보는 탁아소·놀이터시설 확충 등을,강남1 조성은 후보(27·신민·전 당간부)는 환경공해추방등을 공약으로 내걸어 여성유권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여성후보들은 정치성 공약보다 ▲인간교육 실현 ▲범죄추방 ▲결식 어린이 구제 ▲강남북 교육격차 해소 ▲수도관 교체 ▲문화공간 확충 ▲소음공해 방지 등 선거구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민생관련 공약을 많이 제시하고 있은 것이 특색.
▷지방◁
여성후보들은 지방에서도 예외없이 ▲환경 ▲여성지위 향상 ▲청소년 ▲노인복지 ▲식생활 ▲위생 ▲탁아소 등 여성의 전문성을 살린 공약을 내걸고 있다.
이들은 광역의회에 여성들이 많이 진출해야 여권신장 및 환경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한편 「여성의 정치참여 폭을 넓히고 여성특유의 세심한 배려로 도살림살이를 하기 위해」를 출마동기로 내걸었다.
일부 여성후보는 이권이나 자기이익만 챙기는 남성후보들과는 달리 아무 조건없이 살림살이를 할 수 있는 적임자임을 내세우기도 한다.
강력한 여성후보가 출마한 지역일수록 남성후보들도 여성회관 건설등 여성유권자를 의식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 실정.
여성후보들의 공통적인 선거전략은 조직이나 자금동원 등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얼굴알리기에 나서는 「맨발작전」이 주류.
대구 달서 3선거구 임갑수 후보는 자원봉사자 60여명에게 모두 한복을 입히고 10여명으로 감시조를 편성,타후보의 불법선거를 감시하고 임후보 자신은 하루 3백여명의 유권자를 만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소개.
○남편외조도 큰 힘
남편들의 외조도 한몫. 광주 서구 2선거구 안성례 후보(53)는 남편인 전남대 명노근 교수(56·광주·전남 민주연합공동의장)의 적극적인 협조뿐 아니라 민가협과 5·18 열사가족 등이 총동원돼 집중적인 지원활동을 하고 있으며 경남 양산 2선거구의 윤승자 후보(53·무)는 화훼 및 오리농장을 경영하는 남편 김장수씨(53)가 선거사무장으로 일선에 나서 뛰고 있는중.
부산 해운대 3선거구에 출마한 최옥련 후보(31)는 남편이 민자당 탈당을 늦게 하는 바람에 남편대신 출마한 케이스.
최후보의 남편인 이수찬씨(36)는 당초 민자당 공천에서 탈락,무소속으로 출마할 계획이었으나 탈당을 늦게 해 후보등록을 하지 못하자 부인인 최후보가 대신 출마하고 이씨는 선거운동원으로 뒤바뀐 것.
경남 산청 1선거구의 정모선 후보(60)는 산청지역에서 네차례나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남편 정영모씨(60)의 한을 풀기 위해 출마.
30여년동안 남편의 선거운동을 하면서 다진 지역구 기반과 야당조직을 활용,당선을 자신하고 있다.
울산 4선거구 송순동 후보(51)는 지난 기초의회선거에서 낙선한 후 광역에 재도전.
원단을 직접 구입,현수막 10개를 손수 만드는등 「돈안쓰는 공명선거」에 앞장서 시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양산 2선거구 윤승자 후보(53)는 5공때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 출마,3명의 남성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된 경력을 바탕으로 뛰고 있다.
대전 서구 4선거구에 신민당으로 출마한 박완순 후보(46)는 개인택시 운전기사로 과거 10년간 유한운수에서 노조부위원장을 지내기도.
부산 남구 3선거구 서이남 후보(49·민주)는 독신의 맹렬여성으로 윤락녀계도·소년소녀 가장돕기 등 사회사업을 오랫동안 해왔으며 20년전부터 일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남장을 하고 다니는 「제2의 김옥선」.
인천시의 홍일점으로 동구 2선거구에 출마한 원미정 후보(31·전 세창물산 노조위원장·인천 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는 범야권 단일후보「재야 몫」으로 공천받아 박흥식(43·민자)·장순복(45·무소속)후보와 치열한 3파전을 전개중.
장후보가 민자당 공천탈락에 반발,무소속으로 출발한데다 저소득층·근로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선거구여서 야권에서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광주·전남지역의 여성후보는 민자 3명,신민 1명,그리고 재야단체 추천으로 무소속 출마한 2명 등 모두 6명.
신민당이 무공천지구로 선정한 광주 동구 3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윤정 후보와 서구 2선거구의 안성례 후보(53) 등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아예 남장한 후보
「5·18 광주민중항쟁동지회」회장을 맡고 있는 이후보는 조선대 학생들이 대거 선거운동원 및 자원봉사자로 나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안후보는 광주·전남 민주연합 공동의장과 광주·전남민가협 회장 등의 굵직한 직함을 갖고 있는 이 지역 대표적인 여성운동가.
부산·경남지역에서 민자당의 유일한 여성공천자인 부산 북부 4선거구 박정진 후보(57)는 반드시 당선시킨다는 전략에 따라 부산시 지부와 북구 2지구당의 지원은 물론 중앙당 여성국장까지 내려와 지원하고 있다.
대구에서 주목받는 여성후보는 민자당 공천에서 탈락,달서구 4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임갑수 후보(38).
임후보는 지난 11,13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력이 있는등 15년 이상 정치인으로 활동중이며 국민학교때부터 대학시절까지 학생회간부를 지낸 여걸로 통하고 있다.
충남에서는 온양 2선거구에 신민당으로 출마한 노윤숙 후보(42)가 민자당 김종환 후보(60)와 백중세.
노후보는 출마예상자였던 민주당의 이원식씨가 금품살포 혐의로 구속되자 이 조직을 완전히 흡수,신민당 바람이 불고 있다고 주장.
강원도의 유일한 여성후보인 원주 3선거구 안상현 후보(27·신민)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곧바로 정치일선에 뛰어든 전문정치인임을 내세워 남성후보들과 만만치 않은 경합을 벌이고 있다.<특별취재반>
◎여성후보/모두 64명 출마 무소속이 30%로 으뜸
광역의회선거에 출마한 여성후보자는 모두 64명으로 전체후보자 2천8백85명의 2.2%를 차지.
이는 기초의회선거때의 여성후보 비율 1.2% 보다는 1%포인트 높아진 것.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소장 김정숙)에 따르면 가장 많은 여성 출마자가 나온 지역은 서울로 모두 22명이며 다음은 부산·경기로 각 6명.
소속별로는 무소속 20명,신민당 18명,민자당 11명,민주당 9명,민중당 6명,공민당 1명으로 나타나 유수당 가운데 여성공천자 비율은 민중당이 가장 높고 민자당이 가장 낮다.
연령별로는 30대가 20명으로 가장 많으며 50대 19명,40대 14명 순. 학력은 이를 밝힌 59명중 46명이 전문대졸 이상으로 나타났다.
또 직업별로 보면 가정주부는 2명뿐이며 나머지 62명은 각종 사회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24명이 시민운동·사회운동·여성단체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의사·작가 등 전문직종이 12명,정당인이 13명,자영업 11명,연예인 2명 등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