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여행시대의 안전제일주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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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3일 대구공항에서 있은 KAL기의 동체착륙은 아찔한 느낌을 갖게 한다. 다행히 동체착륙이 성공해 승객들의 안전에 큰 이상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하마터면 참담한 대형사고가 빚어질 뻔했다.
놀라운 것은 기장이 동체착륙을 관제탑에만 알리고 승객들에게는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추었다는 점이다. 기장이 어떤 판단에서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뜻하지 않은 위험에 처했을 때는 그것을 감추기 보다는 오히려 승객들에게 상세히 알려 비상사태에의 대응에 함께 협조하도록 하고 자구책도 강구하도록 하는 것이 기초적인 안전수칙이다.
그런데 『커튼을 내리라』고 지시해 승객들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했을 뿐 아니라 스튜어디스 조차도 동체착륙 시도를 통보받지 못했다니 어찌된 일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는 동체착륙이 성공해 승객들이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사전에 아무런 안전조치도 강구할 수 없었던 승객들은 피할 수도 있었던 사고를 당할 뻔했다.
이는 지난 89년 7월 트리폴리에서의 추락사고를 연상시킨다. 당시의 사고는 안개가 극심한 최악의 기상상태인데도 승무원들이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다가 일어난 것이었다. 당시 그러한 무리한 착륙시도의 원인으로는 「안되면 되게 하라」「하면 된다」식의 조종사들의 무모한 인식과 회사의 분위기가 지적되기도 했었다. 승객을 모르게 한 이번 동체착륙도 같은 성격의 것이었을까. 이 점에 관해서는 면밀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어찌됐든 최근의 잦은 항공기 사고에 대해서는 새로운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이제 항공기는 보편적인 교통수단이 되었다. 복수 민항제가 된 이후 노선이 확장되고 운항편수도 크게 증가해왔다. 수요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지만 그 뒤안길에는 승무원·정비사 등 인력부족,빡빡한 비행스케줄에 따른 정비시간의 부족,항공 종사원들의 피로 등 문제점들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어제·오늘에 지적된 문제가 아니지만 국내외적인 치열한 경쟁으로 여건은 개선되기 보다는 오히려 악화되어 왔다는 것이 항공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번 일어났다 하면 대형화하기 마련인 항공기사고의 성격에 비추어 볼때 이런 만성적인 문제점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항공산업은 신뢰와 서비스를 파는 산업이며 그 신뢰와 서비스의 근원은 안전일 수 밖에 없다.
대한항공은 이제 그 규모면에서는 세계 10대 항공사의 하나로 성장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그 질적인 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신뢰를 받는 항공사가 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기술적인 면에서의 개선도 있어야 하겠지만 우선 무리하고 무모한 비행이나 이·착륙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안전의식의 확립과 관계기관의 철저한 감독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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