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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상명대 윤영애 교수 '악의 꽃' 번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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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님은 알몸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알고 있기에/소리나는 보석만 몸에 지니고 있었다.(…)//춤추며 조롱하듯 요란한 소리 울릴 때,/금속과 돌로 된 이 눈부신 세계는/나를 황홀케 하고, 나는 미칠듯이/소리와 빛이 어우러지는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보석' 중)

샤를 보들레르(1821~1867)가 1백40여년 전인 1857년 시집 '악의 꽃'을 출간했을 때 벌어졌던 소동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피가로지는 '악의 꽃'이 "온갖 광란과 마음의 온갖 부패에 개방된 병원"이라고 공격했고, 파리 주재 외국 특파원들은 '보들레르의 물의(物議)'를 앞다퉈 기사화했다.

결국 프랑스 공안당국은 시집을 압류하고, 시집 초판에 실린 1백편의 시 중 '보석'과 여인들의 동성애를 다룬 '레스보스' 등 6편을 삭제하도록 결정했다. 보들레르는 "나의 유일한 잘못은 만인의 이해력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한권의 책은 전체로서 판단되어야 한다"며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늘날 보들레르는 '현대시의 시조'로 평가받고 있고, '위대한 문학의 전통' 속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징주의.초현실주의가 그로부터 뿌리내렸기 때문에 현대시를 논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그에게 돌아가야 한다.

일곱권으로 된 보들레르 전집 번역 작업을 하고 있는 관동대 심재상 교수는 "보들레르는 문학과 미술에 대한 평론작업을 통해 '현대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이론가이기도 하다"며 "'이 시대'를 해명하려는 여러가지 개념들의 출발점이 결국은 보들레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보들레르에 대한 호의적인 사정 변화에도 불구하고 보들레르가 기대했던대로 만인이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악의 꽃'은 여러가지를 품고 있고, 시집 속에 나타나는 시적 자아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고 다면적이다.

보들레르 전문가 윤영애 상명대 교수가 최근 번역.출간한 '악의 꽃'은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태까지 번역서들의 주석이 라틴어로 씌어진 부분에 대한 해석,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신과 인물에 대한 설명 등에서 맴돌았던 데 비해 이번 번역서의 두툼해진 주석은 권위있는 외국 보들레르 전문가들의 해석을 소개해가며 상세하게 시편들을 설명하고 있다.

덕분에 단순한 주석을 넘어 친절한 작품해설에 가깝다. '악의 꽃' 서문과 에필로그 초고, 시집 출간 직후 법정 공방 때 작성된 변호사를 위한 메모와 자료도 보탰다.

윤교수는 머리말에서 "'악의 꽃'의 시적 구조는 자연과 초자연, 신성과 악마주의, 해학과 아이러니의 대조와 모호함 등 다양한 감수성의 결과로 미학의 다양함을 낳고 그 결과 여러 다른 예술의 원칙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신간은 보들레르의 윤곽을 보다 선명하게 제시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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