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 우롱한 학예회식 콘서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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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국제오페라단(단장 김진수)이 주최한 국제 송 페스티벌(5∼8일·세종문화회관대강당)이 예술성이 부족하고 청중을 무시한 진행을 보여 일부 청중들이 환불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빚었다.
이 음악회는 애초 그 출발에서부터 의문점을 안고 있어 음악계 내에서 양식 있는 성악가들은 출연을 기피했다. 국제적인 행사인양 모호하게 표현된「국제 페스티벌」이란 콘서트이름과는 달리 외국성악가라곤 중국 연변의 한국 동포부부 2쌍만 출연해「국제」란 의미가 청중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런 것이었다.
콘서트는 5일 외국가곡 및 민요의 밤, 6일 한국 가곡의 밤, 7일 오페라 아리아의 밤, 8일 젊음의 노래 순서로 무대를 꾸몄다. 총 64명의 성악인이 출연한 이 콘서트는 성악가들이 대거 출연해 겉보기에는 페스티벌의 성격인 것 같지만 실제 공연장 분위기로는 15∼17명의 출연자가 쉴 틈 없이 등·퇴장하는 마치 입시생의 수험장이나 콩쿠르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출연자들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서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가족음악회」가 흔히 그렇듯 연주력과는 상관없는 억지환호가 청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이 왜 그 같은 콘서트를 위해 4일씩이나 대관을 결정했는지 의심스럽다. 편의주의 대관행정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학예회식 콘서트가 결정적 문제를 일으킨 것은 8일의「젊음의 콘서트」. 약속된 출연료를 지급 받지 못한 서울 심포니 오키스트라가 무대출연을 거부했던 것이다.
예정된 시각인 7시30분이 지나도 연주회가 시작되지 않자 청중들은 박수를 치며 출연자의 등장을 재촉했다.
『사정이 생겼으니 30분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있자 청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8시가 되자 국제 오페라단기획실장이『음악가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시겠지만 개런티가 지급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생긴 일이니 조금 더 기다려주시면 오키스트라는 설득, 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고 본래연주시작 시간보다 1시간10분이 지난 8시40분에야 비로소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부끄럽고 침울한 분위기에서 멋진 앙상블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더구나 뒤늦게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로비에서는 일부 청중들이 주최측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환불을 요구, 로비에 줄을 서는 등 거친 말투가 오가는 바람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환불받은 청중과 음악회에 실망한 청중, 시간의 지연으로 인해 자리를 뜨는 청중…. 모처럼 음악회장을 찾은 청중들에게 준 이처럼 불쾌한 인상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이 콘서트는 예술성에 아랑곳없이 흥행에만 몰두한 상업주의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 셈이다.
무대에 설 기회가 드물어 애태우는 신인 성악가에게 무대를 제공한다는 명분을 얻으려는 주최측의 무리한 진행이 이 같은 과오를 초래했다. 청중을 무시하는 이 같은 콘서트는 없어야한다.
공연장 측도 공연주최자의 예술행위에 대한 평가를 공연장의 대관기준에 합리적으로 적용하고 물의를 빚는 단체에는 공연장들이 공동으로 제재를 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바른 극장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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