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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시즘 연구폭 넓힌다|거듭나는 진보학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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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사회변혁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온 진보적 학계가 변하고 있다.
학문연구를 사회운동과 연계시킨다는 취지에서 흔히 「학술운동」이라 불러온 진보적 학계의 연구활동이 최근 스스로의 문제점을 진단·반성하고 새로운 학문적 발전을 위한 변신을 모색중이다.
학술운동권이 이 같은 반성과 변신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지속된 학계의 침체와 혼돈 때문 진보적 학계는 그동안 사회주의적 이념지향을 연구의 잣대로 삼아왔다가 최근 현실적 잣대(소련 등 사회주의국가)가 흔들리면서 이론적 혼돈상태에 빠져왔었다.
자체비판의 목소리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진보적 학계의 두 중심인 정치학의 최장집 교수(고려대)와 경제학의 김수행 교수(서울대)의 지적이다. 이들은 지난해 월간잡지로 발간 중단됐다가 최근 계간으로 재발간된 『사회와 사상』의 특집좌담 등에서 학술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강조했다.
비판의 큰 줄기는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편협되고 경직된 인식수준이 가장 큰 문체로 지적된다. 진보학계의 사회주의연구, 곧 마르크시즘연구는 다양하고 풍부한 연구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소련의 스탈린식 교조주의 해석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시즘의 종주국인 소련으로부터 밀어닥친 변화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어 혼란에 빠진 것.
사실상 마르크시즘은 서구사회에서 「헤겔주의적 마르크시즘」(루카치), 「구조주의 마르크시즘」(알튀세), 「실존주의적 마르크시즘」(사르트르) 등으로 발전됐으며 최근에는 국가이론·세계체제론 등으로 분화·발전해왔다. 그리고 이같이 발전해온 서구의 마르크시즘은 사회주의국가의 전체주의적 관료주의에 대해 이미 비판해왔으며 마르크스가 예상치 못했던 현대자본주의 사회를 분석·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학계는 서구마르크시즘의 다양한 이론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한 채 초기 마르크시즘과 경직된 스탈리니즘에 경도돼 온 것이다. 그 결과 페레스트로이카를 이해하는 수준 역시 천박하고 극단적인 경향을 빚게되었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로 지적되는 것은 우리의 현실과 괴리된 이론의 문제, 즉 현실상황에 맞춰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채 남의 이론을 따라가기에 급급해 이론자체가 공허해지고 사회운동과의 연계성도 부족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실문제에 대한 점진적 개량을 백안시하고 현실성 없는 혁명만을 주장하는 경향도 이론의 현실검증이 부족한 결과의 하나로 지적된다. 우리사회는 레닌이 혁명을 일으킨 러시아사회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 초보적인 개량단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세 번째는 진보적 학문연구가 어려운 사회상황과 연구자들의 노력부족의 문제다. 학술운동 침체의 가장 직접적 원인으로 진보적 연구를 가로막는 공안정국과 보수일변도의 학계풍토가 지적됐다. 진보적 연구에 대한 재정지원이 전무하며 교수임용에서도 진보적 연구자들이 배제된다는 것.
한편 이 같은 문제의식이 진보적 학계 전반에 확산된 상태에서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노력들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 흐름이 첫 번째 지적된 서구 마르크시즘을 수용하려는 움직임. 수정주의로 비판받아온 베른슈타인 등의 사회민주주의가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으며 마르크시즘적 개념을 사용하면서도 서구 사회과학적 방법을 원용하는 분석적 마르크시즘과 조절이론 등도 각종 학술잡지와 단행본 출간형태로 소개되고 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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