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에 열린 새 지평(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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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답답하기만 하던 남북한관계에 새로운 숨통이 트이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다.
북한의 이 결정은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한반도에 두개의 정부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토록 망설이던 남한 정부의 실체를 북한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결단을 내린데 대해 우리는 우선 환영한다.
그동안의 경위야 어떠했든 이제는 평화공존의 바탕에서 대화를 풀어 나가고 통일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지금까지 남북한관계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근본적인 장애가 바로 남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북한측의 「하나의 조선」 논리였으며 이를 일단 접어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여러차례 「하나의 조선」 논리를 포기하는 것이 통일노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왔다. 50년 가까운 분단이 엄연한 사실인 이상,그런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상호 대화와 교류를 통해 통일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서로가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대등한 관계에서 평화공존의 기틀을 다진 다음 통일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평화공존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통일로 가는 과정으로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것처럼 「조국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지 않는 원칙」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통일로 가는 과정으로서의 평화공존은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따라서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그러한 과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북한의 이러한 결정이 북한의 대남정책이나 그들 내부의 정책에 반영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분명하다. 당장 통일전선 전략까지 포기할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들의 속성으로 보아 단정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적어도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남북한 대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 분위기는 충분히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동안 대화에서 커다란 논쟁거리였던 유엔가입문제에 대한 불필요하고도 소모적인 쟁점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또 하나 긍정적인 것은 유엔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직접적인 남북한 대화의 통로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냉전시대 유엔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적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기능에 대한 평가의 눈도 달라지고 있다.
국제적으로 상호의존관계가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구체적 역할도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다.
유엔 회원국간의 평화유지 기능외에 토론장소·협력기구·중재기구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국제행위의 규범을 설정하는 기관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유엔가입은 따라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남북한의 접촉기회를 넓히고 상호 무력충돌방지와 긴장완화에 노력할 수 있을뿐 아니라 협력증진의 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
물론 이는 부차적인 효과일 수 밖에 없다. 통일문제는 종국적으로 남북한 당사자가 직접 만나 주체적으로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엔가입문제도 남북한이 합의하여 결정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다. 북한이 내외현실에 떼밀려 마지못해 결단을 내린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북한이 커다란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이상 이를 바탕으로 남북한당국이 하루빨리 고위급회담등 접촉을 재개하여 통일의 기틀을 다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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