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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안정 향한 실천을/대통령의 시국처방을 보고(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확대당정회의에서 밝힌 시국 대책의 골자는 대체로 획기적 내용을 담았다기 보다 대통령의 기존 구상을 진일보 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인상이다.
그 중에도 표현상 모호한 점이 여전히 있긴 하지만 정치부문에서 내각제 개헌을 사실상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밝힌 것과 민자당 후계문제와 관련해 경선제 도입을 강력히 시사한 점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노대통령은 내각제를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 자신의 일관된 입장이었다고 전제하긴 했지만 현상황에서 『내각제 개헌은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추진해서도 안된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포기선언이라고 해석해도 무난할 것 같다.
나아가 내각제 개헌에 관한한 어떤 의혹도 있을 수 없고 정치쟁점화 되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인 것은 적어도 앞으로는 현행 헌법대로 가는 것을 전제로 국정을 운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내각제가 바람직스럽다고 천명한 6·29의 신념에서 한 발짝도 옆으로 간 적이 없음을 굳이 되풀이 한 것에 해석상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혹시 14대 총선 후 있을지도 모르는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기대한 의도적 모호성일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겼다.
노대통령의 진의가 어떻든 객관적으로 내각제 개헌이 현재로선 어렵고 대통령이 이런 여건에 승복,수용한 듯 하다. 정치권은 이제 여야간에 비생산적인 개헌논쟁 보다는 정상적인 차기대통령 선출 절차에 관심을 갖는 것이 정도라고 본다.
현행 대통령 직선제가 계속될 때 민자당의 차기후보를 「당내 민주주의의 공명한 민주절차」에 의해 결정토록 하겠다는 것은 민자당이 반드시 이룩해야 할 핵심과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문제는 노대통령과 김영삼 민자당 대표간에 극단적 이해대립을 보일 소지를 안고 있어 당내경선이 건설적 민주화과정이 될지,아니면 사생결단의 내분을 초래할 불씨가 될지 두고봐야 할 것 같다.
당내세력이 열세인 김대표는 패배가 명백한 후보경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버티고,노대통령이 경쟁을 자유방임해 버리면 민자당은 다시 분열의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대통령이 최근의 시국불안 원인을 국민의 저변에 불만과 갈등의 요인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파악한 것은 옳은 진단이라고 본다. 따라서 다수 국민의 민생대책과 「좌경폭력파괴행위」에 대한 단호한 정면대응이 어떻게 엄격히 구별되어 추진되느냐에 수습의 승패가 달려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시국불안의 요인이 이처럼 민생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좌절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대통령이 이제야 알았을 리 없다. 이같은 문제제기는 대통령 취임 얼마후부터 있었지만 6공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기억이 별로 없다.
이제 말로만 하는 원인분석과 처방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온 국민이 느끼고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이제까지 해오던 「민주화 과정의 진통」이란 설명만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경제문제는 현실감각이 너무 안이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가상승,주택부족,부동산투기 등 내부문제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본질적 문제,예컨대 경쟁력 약화와 시장개방 등에 따르는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방안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중점적으로 거론된 내부문제도 막연한 낙관론으로 일관하고 있어 예컨대 10년내에 주택문제를 완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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