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니 산 경영 되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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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조남홍 기아자동차 사장은 한파가 몰아친 13일 임직원 및 지점장 250여 명과 함께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해발 1915m)에 올랐다. 산 중턱의 낮 최고 기온이 영하 7도에 머물던 추위 속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10시간 동안 왕복 14㎞를 같이 걸었다. 천왕봉 꼭대기에서는 올해 내수 점유율 27%(지난해엔 23%) 달성을 위한 결의대회도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힘든 과정을 견뎌내고 정상에 서듯 환율 등 악재를 이기고 경영 목표를 달성하자는 뜻에서 지리산 등반을 했다"고 말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지난 6일 눈보라 속에서 계열사 사장단 및 신입사원 등 380여 명과 경기도 광주 태화산을 등반했다. 박 회장은 다음날에도 아시아나항공 임직원 240여 명과 북한산을 찾았다. 줄곧 선두에 섰던 박 회장은 정상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비상(飛上)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성장 의지를 다졌다.

새해 들어 '등산 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 임직원과 산에 오르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경영 비전을 공유하려는 최고경영자(CEO)가 늘고 있는 것이다.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은 새해 첫날 임직원 40여 명과 북한산에서 '선구자'를 합창하며 산정 시무식을 하기도 했다. 에쓰오일의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CEO 사미르 A. 투아비엡도 13일 울산 공장 임직원과 경주 토함산에 올랐다.

산행 경영의 가장 큰 효과는 CEO와 직원 간 소통이다. 최소 4~5시간은 걸리는 등산 과정은 물론, 산에서 내려온 뒤 막걸리집 등에서 잔을 기울이며 진솔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CEO와 임직원이 어렵지 않게 한마음이 될 수 있다. 이에 더해 CEO는 힘든 것을 참아가며 산행을 이끄는 과정에서 경영 의지를 다지게 되고, 직원들은 CEO가 앞장서서 산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리더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CEO와의 산행에는 직원들 호응도 뜨겁다. 20일 신헌철 사장과의 태백산 산행을 준비 중인 SK㈜는 신청자가 넘쳐 참가 인원을 예정했던 50명에서 200명으로 늘렸다. 왕복 교통비 등 5만원의 비용을 각자 부담하도록 했는데도 그렇다. 이 회사의 신년 태백산 등반은 올해로 3년째. 3년간 개근한 명 성 과장은 "등산하는 동안 CEO나 임원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고, 또 함께 정상에 오르면 소속감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산행은 노사 관계를 다지는 데도 활용된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13일 장석춘 노조위원장 등 노조 간부 40여 명과 서울 청계산을 다녀왔다. 이 회사 관계자는 "힘들 때 노조와 경영진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서로가 동반자임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안용찬 애경 부회장도 노사 화합을 다지는 차원에서 매년 한차례 노조 간부들과 산을 찾는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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