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이라크 2만 명 증파'에 비난 여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이라크 동남부 바스라의 시민들이 11일 텔레비전을 통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시청하고 있다. [바스라 AP=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군 2만여 명을 이라크에 더 파병하겠다고 밝힌 10일 미국의 전국지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베트남전 당시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을 언급했다.

존슨 대통령은 1969년 "월남의 평화 전망이 더없이 밝으며, 월맹은 이길 가망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6년 뒤 미국은 월남을 포기했다. 그때까지 미국은 병력을 계속 투입해 2만1000명의 미군이 목숨을 더 잃었다. 신문은 "이라크와 베트남은 미국 대통령이 적을 과소평가하고, 국민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두 가지 점에서 완전히 닮았다"고 비판했다.

◆부시 '마이 웨이' 고집=그의 새 이라크 전략은 한마디로 '나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다. 미 국민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이라크전 실패를 지적하며 공화당에 등을 돌렸다. 지난해 말 미군 희생자 수가 3000명을 돌파하면서 이라크에서 발을 빼라는 여론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기존 노선을 고수하겠다'고 이날 강조했다. 미군을 대폭 증강하고, 경제지원을 확대하며, 이란과 시리아에는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5명씩 추천한 원로로 구성된 '이라크연구그룹(ISG)'이 냈던 보고서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민주당은 즉각 "미군 증파 안을 반대하며, 적극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 여론조사에서도 증파 반대는 61%, 찬성은 36%에 그쳤다.

부시 대통령은 황금시간대인 이날 오후 9시 TV 생중계로 연설을 했다. 악화된 이라크 여론을 돌려보려고도 애썼다. 미국 언론들은 "이라크전 개시 이후 부시에게 가장 중요한 회견"이라며 "대통령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던 이라크에서의 실책을 일부 시인하며 몸을 낮췄다"고 전했다.

◆부시, 왜 그랬나=특유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당대보다는 나중에 역사로부터 평가받겠다는 심리다. "테러리스트와의 싸움에서 물러선다면 후세의 미국인이 '도대체 뭘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논리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중요한 시기에 이라크에서 발을 뺄 수는 없다"며 "이라크가 안정된 뒤에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전략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향후 전망=부시의 새 정책까지 먹히지 않는다면 이라크 내 시아파와 수니파 간 갈등은 더욱 심해져 내전으로 번질 것이라고 중동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민주당의 반발이 강해 부시 대통령의 새 전략이 추진될지 의문"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은 앞으로 이라크 청문회를 열어 대정부 공세를 펴는 한편 이라크 증파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추가 전쟁 예산 승인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