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큰일났어" 한마디 듣고 퍼즐 풀듯 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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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보도한

신성호 기자 (현 논설위원)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우리 사회에 민주화 시대를 열게 한 기폭제였지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렸던 신성호(51.사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11일 "그 토대가 있었기에 현재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이 가능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1987년 1월 15일 오전 10시. 당시 대검찰청을 출입하던 신 기자는 한 간부를 만나 얘기를 나누던 중 "경찰, 큰일 났어"라는 짤막한 말을 들었다. 당시 입사 7년차이던 신 기자는 '심각한 사건이 터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 기자는 "그러게 말입니다. 어쩌다 그런 일이"라며 사건의 내용을 아는 척하며 말을 풀어갔다. 간부의 입에서도 '남영동' '서울대생'등 단초들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이어 신 기자는 검찰 관계자 10여 명을 만나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갔다. 그 결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이 죽었으며, 검찰이 경찰의 가혹행위 여부를 수사 중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인적사항이었다. 신 기자는 "오전 11시반쯤 '언어학과 3학년 박종○'라는 이름을 알아냈다"며 "이후 서울대 취재를 담당하던 김두우 기자(현 논설위원)가 학적부를 뒤져 이름을 찾았다"고 말했다.

당시 석간이었던 중앙일보는 신 기자의 기사를 이날 낮 12시쯤 발행된 돌판에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으로 특종 보도했다. AP.AFP 등 외신은 중앙일보를 인용해 이 사건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신 기자의 특종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 총수의 엉터리 해명으로 이어져 6.10항쟁 등 민주화의 물꼬를 튼 보도로 평가받고 있다.

신 위원은 "진정한 민주화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최근 노사관계 등 현안을 지켜볼 때 지나치게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을 민주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은 유민문화재단(이사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의 지원을 받아 올 3월부터 두 학기 동안 고려대 언론학부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언론문장연습'강좌를 맡는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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