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역풍 돌파' 나선 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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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자신의 ‘개헌 제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오후 3시쯤 서울 지하철 3호선에 설치된 모니터에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면이 방영되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뉴스분석 노무현 대통령의 11일 기자회견을 관통한 주제어는 '개헌 역풍을 뚫어라'였다. 노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한 이후 각계에선 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개헌론에 숨어 있을 정략적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게 역풍의 정체다. 여론 조사 결과 응답자의 60~70%는 현 정권의 개헌 추진에 반대했다. 이 역풍에 맞서 노 대통령은 개헌 불씨를 살리기 위한 새 카드를 내놓았다. ▶조건부 탈당▶임기 단축(하야) 부인이었다.

열린우리당 일부 인사들과 민주당 등은 개헌 제안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탈당과 같은 가시적 선언을 하라고 요구해 왔다. 노 대통령은 "야당들이 개헌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 온다면"이란 조건을 달았지만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정치권에서 거론하는 조기 하야 가능성은 "개헌에 대통령 신임을 걸지 않겠다"고 부인했다. 정략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소재를 걷어내기 위한 차원이다.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공세적 발언도 불사했다. 개헌 제안을 "정략적"이라고 비난하는 한나라당이 주 타깃이었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토론거부를 결의하고 함구령까지 내리는 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에 대해선 "이런저런 차기 후보 가지고 여론 지지가 좀 높으니까 마치 받은 밥상으로 생각하고 몸조심하는 모양"이라며 "오만한 자세"라고도 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대선 주자들의 책임론을 언급했다. "장차 이 나라의 5년 국정 운영을 맡겠다는 정치 지도자들이 외면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 여론의 주목도가 높은 차기 대선 주자들을 자극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개헌 제안의 다음 행보를 시사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할 것"이라는 부분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신년 연설▶기자 간담회▶국민과의 대화 등 2월 하순까지 지속적인 여론화에 나선다는 시간표를 내부적으로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은 개헌안 발의까지 이어갈 생각이 분명하다. 이날도 "설사 (개헌안이)부결된다고 대통령이 기죽을 필요는 없고…"라고 말했다. 개헌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강한 만큼 탈당 같은 후속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은 크다. 청와대 측은 중립내각 구성, 정치 불개입 선언 등의 카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여론의 향배다. 청와대가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이다. 개헌론이 탄력을 받으려면 여론이라는 동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개헌이 돼도 제가 다시 출마할 수 없다" "60년 가까운 헌정사에 우리는 9차례 헌법을 개정했는데 비슷한 기간에 독일은 51차례 했다"고 말한 것도 호소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글=박승희 기자<pmaster@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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